하루를 온전히 담다
이 글은 반려견인,
라울이의 시선에서 바라본 세상 이야기입니다
【 내 이름은 라울, 나는 반려견이다 】
1부-첫 만남, 그리고 나의 세계
다섯 번째 이야기 - 나의 하루는 예술이야
주중 아침은 늘 윤 집사가 먼저 하루를 연다. 눈을 감은 채 요가가 끝나면 나를 깨워 스트레칭을 한다. 그러나 주말 아침은 다르다. 그날의 알람은 나의 꼬리다.
나는 시계보다 먼저 눈을 뜬다. 이불속에서 들려오는 윤 집사의 느리고 고른 숨소리를 확인하면, 꼬리는 이미 ‘작동 준비 완료’ 상태다. 살금살금 침대 옆으로 다가가 이불 끝을 ‘탁, 탁’ 두드린다. 한 번, 두 번, 세 번… 이건 나만의 모닝콜이다. 처음엔 졸린 눈을 비비던 윤 집사도, 내 눈과 마주치면 금세 미소를 짓는다. 그 미소야말로 오늘 하루를 열어주는 첫 번째 신호다.
윤 집사는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바로 산책을 나간다. 주말에만 허락되는 일이다. 현관에서 목줄이 채워지는 순간, 내 마음속에서는 이미 거리를 세 바퀴쯤 달리고 있다. 문이 열리면 세상은 순식간에 냄새로 가득 찬 거대한 우주가 펼쳐진다. 어제까지는 없던 길가의 이끼 냄새, 막 피어난 꽃향기, 옆집 강아지가 남긴 아침 인사까지. 사람은 세상을 눈으로 읽지만, 우리는 코로 읽는다. 그래서 세상은 더 입체적이고, 더 따뜻하다.
산책 중에는 작은 사건들이 우연처럼 찾아온다. 어느 날은 골목 모퉁이에서 깜냥이를 만났다. 예전에 치즈냥이에게 기습을 당한 적이 있어 조심스레 다가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친구는 번개처럼 앞발을 휙 내밀었다. 순간 볼이 얼얼해졌지만,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이게 고양이식 인사인가?’ 하고 돌아봤을 때, 깜냥이는 아무렇지 않게 털을 정리하고 있었다. 묘하게 배운 듯한, 묘하게 남는 아침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면 곧바로 발을 씻고 윤 집사는 주방으로, 나는 창가로 간다. 창문 틈새로 들어오는 바람은 매번 다른 목소리를 들려준다. ‘오늘은 조금 따뜻할 거야’ 하고 속삭이는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까르르’ 웃음소리, 그리고 택배 기사의 규칙적인 ‘터벅터벅’ 발걸음까지. 그 모든 것이 창문 앞 작은 세상에서 펼쳐진다.
간혹 주방에서 무언가 꺼내는 소리가 들리면 나는 순식간에 거실 한가운데로 이동한다. 이것이 나만의 ‘간식 소환 의식’이다. 눈빛으로 주문을 넣고, 꼬리로 결제를 마무리하면 작은 고기 간식이 내 앞에 놓인다. 그 순간 나는 미식가가 된다. 간식 한 알에도 세상은 달콤해진다.
오후에는 낮잠이 기다린다.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는 자리를 찾는 건 작은 의식이다. 오늘은 소파 한쪽, 어제는 침대 발치. 발을 쭉 뻗고 코끝을 꼬리 가까이 붙이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모양이 완성된다. 꿈속의 나는 늘 달린다. 넓은 들판, 파도치는 해변, 그리고 윤 집사와 숲 속 길. 더 빠르고, 더 자유롭다. 가끔 꿈속에서 짖는 소리에 깜짝 놀라 깨기도 한다.
주중 저녁,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 내 꼬리의 속도는 시속 200km를 돌파한다. 하루 중 가장 기다리던 순간. 윤 집사가 두 손을 뻗어 나를 안아 올리면, 그 품에서 하루의 무료함이 녹아내린다. 짧은 저녁 산책길에도 가로등 불빛 아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진다. 그 그림자를 보며 우리는 같은 속도로 걷는다.
밤이 찾아오면 내 침대에 몸을 말고 눕는다. 윤 집사가 소리 내어 책을 읽어 주거나, 가끔은 내 귀를 살짝 쓰다듬는다. 그 부드러운 손길이 하루의 마지막 선물이 된다. 불이 꺼지고 방이 조용해지면, 이불속 깊이 파고들어 숨을 고른다. 눈꺼풀을 내리며, 내일 아침 다시 꼬리로 하루를 응원해 줄 생각에 미소를 머금는다.
누군가에겐 내 하루가 지루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겐 매 순간이 선물이다. 아침의 꼬리 인사, 산책길의 향기, 창가의 바람, 간식의 기쁨, 낮잠의 평화, 저녁의 귀가 인사. 그 모든 것이 모여 하나의 완벽한 하루가 된다.
그래서 나는 속삭인다.
”내일이, 오늘과 똑같아도 참 좋아 “
그게 내가 아는 하루의 예술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