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켜지면 또 다른 여행이 시작된다
이 글은 반려견인,
라울이의 시선에서 바라본 세상 이야기입니다
【 내 이름은 라울, 나는 반려견이다 】
1부 - 첫 만남, 그리고 나의 세계
네 번째 이야기 - 나도 꿈을 꿔
밤이 깊으면 집 안은 숨소리만 남는다.
윤 집사는 책을 덮고 불을 끄고, 나는 내 침대로 간다.
하지만 나의 하루는 그때 끝나지 않는다.
진짜 여행은 눈을 감은 뒤 비로소 시작된다.
낮에 맡았던 냄새들이 어둠 속에서 하나둘 피어오른다.
햇빛에 달궈진 바람 냄새, 누나가 몰래 주었던 소고기 냄새,
빛의 속도로 쏘다니던 낯선 강아지의 체취.
그 향기들이 어느샌가 길이 되고,
나는 그 길 위를 망설임 없이 달리기 시작한다.
가끔 윤 집사가 밤중에 ‘헥헥‘거리는 내 소리를 듣고 웃으며 말한다.
“라울, 너 꿈꾸는구나. 무슨 꿈꾸는 거야?”
그럴 때면 안다.
현실의 나는 안전한 침대 위에서 얌전히 누워 있지만,
마음은 이미 초원 어딘가에서 바람을 가르고 있다는 걸.
한 번은 이런 꿈을 꿨다.
끝이 보이지 않는 풀밭이 펼쳐져 있었고,
바람은 부드럽게 내 등을 밀어주었고, 햇살은 귀를 간질였다.
나는 줄에 묶이지 않은 몸으로 마음껏 뛰었다.
발밑에서 강아지 풀잎이 ‘사각사각’ 소리를 냈고,
저 멀리 윤 집사가 “라울, 여기야!” 하고 손을 흔들었다.
나는 단숨에 달려가 윤 집사의 품에 안겼다.
그 품은 현실보다도 더 따뜻했다.
깨어나고도 그 온기가 오래 남아 있었다.
또 어떤 날은 맛있는 음식을 먹는 꿈을 꾸었다.
식탁 위에 닭가슴살, 고구마, 소고기, 그리고 연어 간식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날은 아무도 “안 돼!”라고 하지 않았다.
나는 배가 빵빵해질 때까지 먹고 또 먹었다.
어찌나 뽕실해졌던지.
간식의 향과 맛이 코와 혀에 그대로 남아 있었고,
꿈에서 깨어나도 입안에서 그 여운이 한참 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물론 무서운 꿈을 꾼 적도 있다.
천둥이 치는데 숨을 곳이 없는 꿈,
아무리 뛰어도 윤 집사가 보이지 않는 꿈.
그럴 땐 꿈속에서도 숨이 가빠지고, 꼬리가 축 처진다.
다행히 그 순간 눈을 뜨면,
곁에 있는 따뜻한 가족들의 숨소리가 나를 진정시킨다.
‘아, 집이었구나.’
그 짧은 안도감이 얼마나 큰 선물인지 새삼 느낀다.
꿈은 나에게 또 다른 세상이다.
낮 동안 만났던 냄새와 소리가,
가보지 않은 장소와 뒤섞여 전혀 새로운 풍경을 만든다.
그 속에서 나는 더 용감해지고, 자유로워지고,
때로는 한없이 어리광 부리는 존재가 된다.
현실에서는 할 수 없는 일도, 꿈속에서는 마음껏 할 수 있다.
사람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현실에서의 나와 꿈속의 내가 다를 수 있다.
꿈속에서도 서두르며 달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평소엔 감추던 웃음을 마음껏 터뜨리는 사람도 있다.
중요한 건, 꿈이 우리 마음속 깊은 곳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낮에 미처 알지 못했던 두려움, 기쁨, 바람이
다 그 속에 담겨 있다.
나는 그래서 꿈을 좋아한다.
그건 낮의 나를 더 잘 이해하게 해주는 거울이자,
마음이 쉬어가는 놀이터다.
그리고 깨어났을 때,
꿈에서 느낀 용기와 즐거움을 조금이라도 현실로 가져올 수 있다면,
그건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다.
오늘 밤에도 나는 그 선물을 기대하며 잠이 들 것이다.
이상한 소리를 내며 짖고, 귀가 살짝 움직이며,
꼬리가 꿈속에서 흔들릴 수 있다.
아마 내일 아침, 윤 집사가 말할 거다.
“라울, 무슨 꿈꾼 거야?”
그럼 나는 하품 속에 살짝 미소를 섞어 대답할 것이다.
‘응, 이번엔 수영을 하고 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