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이 다가와 나를 지켜주는 손길
이 글은 반려견인,
라울이의 시선에서 바라본 세상 이야기입니다
【 내 이름은 라울, 나는 반려견이다 】
2부- 웃음과 사건이 있는 일상
열다섯 번째 이야기-집사의 수행원은 나의 수행원이기도 해
윤 집사에게는 수행원이 있다.
주중에는 윤 집사의 출퇴근 길을 마치 기사처럼 책임지고, 주말이면 도서관 픽업을 도맡아 한다. 윤 집사가 무거운 짐을 들라치면, 수행원은 재빠르게 낚아채서 윤 집사의 손에 무거운 짐이 들릴 기회조차 없다. 수행원은 늘 윤 집사의 곁을 지키며,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가 끊이질 않는다. 그 모습은 마치 오래도록 연습된 듯 자연스럽다.
윤 집사는 나의 집사다. 그렇다면 집사의 수행원은 곧 나의 수행원이기도 하다.
윤 집사가 나의 산책과 목욕을 책임진다면, 수행원은 식사와 기저귀를 맡아 돌본다. 서로 다른 몫을 분담하지만 그 합은 절묘하다. 나는 두 사람의 손길 속에서 세상에서 가장 귀한 개로 대접받는다.
주말 아침이면 윤 집사가 나의 목줄을 챙기고 현관 앞에서 “라울, 산책 가자” 하고 부른다. 문이 열리는 순간, 수행원은 기분 좋게 따라 나와 뒷모습을 지켜본다. “조심히 다녀와.” 짧지만 따뜻한 그 인사는 나의 발걸음을 더 가볍게 만든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전까지도 수행원의 눈길은 우리를 배웅한다. 산책은 윤 집사의 몫이지만, 그 시간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수행원에게서 비롯된다.
윤 집사가 도서관으로 향하면, 수행원은 나와 집에 남는다. 이 시간은 우리 둘만의 은밀한 일과다.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수행원 곁에서 나는 몸을 기대어 앉는다. 텔레비전 속 세상은 부산스럽지만, 소파 위 공기는 고요하다. 수행원은 무심히 화면을 바라보다가 내 귀를 천천히 쓰다듬으며 중얼거린다. “라울, 너는 왜 이렇게 사랑스러워.” 질문이라기보다는 속삭이는 감탄에 가깝다. 나는 꼬리를 천천히 흔들어 대답한다. 그 짧은 교감이면 충분하다.
가끔은 수행원이 직접 산책을 맡는다. 윤 집사와는 또 다른 리듬이 흐른다. 윤 집사의 산책이 빠르고 목적지를 향한다면, 수행원의 산책은 다정하고 여유롭다. 길가의 작은 꽃 앞에서도, 오래된 돌담 앞에서도 쉽게 멈추고, 내 코끝이 머무는 순간을 존중해 준다. 나는 그 차이를 정확히 알아차린다. 수행원과의 산책은 마치 ‘산책 속의 산책’ 같다. 발걸음은 느리지만, 시간은 더 깊어진다.
식사 시간에도 수행원의 손길이 있다. 윤 집사가 바쁠 때면 수행원이 내 밥그릇을 챙긴다. 사료를 붓는 손길은 담백하지만 정성스럽다. 나는 그 손길을 기억한다. 밥그릇이 바닥을 드러낼 때까지 꼭꼭 씹어 먹는 이유는 하나,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든든함 때문이다. 수행원이 내 식사를 바라보는 시선 속에는 작은 책임과 큰 애정이 함께 담겨 있다.
그리고 가장 은밀한 일, 기저귀 교체도 수행원의 몫이다. 윤 집사도 쉽게 손을 대지 않는 일인데 수행원은 서슴지 않는다. 오래전부터 해온 터라 능숙한 손길로 기저귀를 교체한다. 꾸중도, 지루함도 없다. 오히려 “라울, 잘했어” 하고 다독이며 작은 간식을 건넨다. 그 목소리와 보상은 낯선 순간마저 편안하게 바꿔놓는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윤 집사가 나의 공식적인 주인이라면, 수행원은 비밀스러운 후원자 같다. 산책길에는 보이지 않아도, 집 안의 모든 순간마다 반드시 존재하는 사람.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나를 돌보지만, 그 합이 만들어내는 울타리 안에서 나는 안전하다.
밤이 되면 두 사람은 나란히 침대에 앉는다. 윤 집사는 책을 읽고, 수행원은 졸린 눈으로 휴대폰을 바라본다. 그 사이 나는 두 사람의 발밑에 파묻혀 잠든다. 따뜻한 발길과 다정한 손길이 교차하는 그 자리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곳이다. 눈을 감으면 내일도 이어질 삶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내가 꿈꾸는 내일은 복잡하지 않다. 윤 집사와 수행원, 그리고 나. 그 세 명이 함께하는 오늘이 곧 내일이 되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