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롱보드쯤은 탈 수 있어

보드 위에서 배운 삶의 균형

by 소담


이 글은 반려견인,
라울이의 시선에서 바라본 세상 이야기입니다

【 내 이름은 라울, 나는 반려견이다 】
2부- 웃음과 사건이 있는 일상
열네 번째 이야기-롱보드쯤은 탈 수 있어



우리 가족은 모두 보드를 멋지게 탄다.

형과 누나는 순발력이 좋아 무엇이든 잘 탄다고 치지만,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아빠와 윤 집사마저 롱보드를 노련하게 다룬다. 형과 누나의 경우, 바퀴가 돌 때마다 몸이 물결처럼 부드럽게 흔들리고, 모서리를 스치듯 회전하거나 두 발로 보드 끝을 톡톡 차며 방향을 바꾸는 모습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다. 그나마 다행히 아빠와 윤 집사는 형. 누나만큼은 아니다.


그러니 가족 중 보드를 못 타는 건 나뿐이었다.

명색이 푸들계의 순수혈통인 내가, 가족들 다 타는 보드를 못 타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과 다르게 몸은 그리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바퀴 달린 물체 위에 올라선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처음에는 ‘타야겠다’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안 탈 수 있을까’를 먼저 고민했다.

첫 시도는 참담했다. 윤 집사가 나를 보드 위에 올리려는 순간, 나는 꽁무니를 빼고 최대한 멀리까지 달아났다. 아스팔트 위에서 ‘드르륵’ 울리는 바퀴 소리가, 내 귀에는 천둥처럼 크게 들렸다. 그날 이후 한동안 보드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다행히 가족들은 서두르지 않았다. 억지로 태우지 않았고, 그 기다림이 오히려 믿음을 만들었다. 보드를 타는 건 여유가 생길 때 해도 된다는 가족들의 태도가, 내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었다.


우린 아주 쉬운 단계부터 시작했다.

먼저, 보드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기. 아스팔트의 거친 결이 발바닥에 스치는 감각에 익숙해질 때까지, 가족 품에 안겨 보드 위에 올랐다. 며칠이 아니라, 몇 달 동안. 때로는 보드 위에 얹힌 간식 한 알이 나를 유혹했다. 발을 올리면 바람 대신 고소한 냄새가 먼저 나를 맞았다.


그다음엔 혼자 서보기. 네 발로 중심을 잡았을 때, 발끝에서부터 어색한 긴장감이 올라왔다. 멀리서 아이들이 킥보드를 타고 웃는 소리가 들리고, 바람이 귀 끝을 스쳤지만, 속도가 붙는 순간 온몸이 굳었다. 꼬리는 반쯤 말리고, 발가락 사이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그럴 때마다 가족들이 내 속도에 맞춰 끌어주었다.

긴 보드의 앞부분에는 내가 서고, 윤 집사는 뒤에서 등을 받쳐주었다. 보드가 살짝 움직이는 그 순간, 바람이 볼을 스치고 심장은 한 박자 빨라졌다.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완벽함이 아니라 시도가 중요하다는 걸 어렴풋이 알았다.


이렇게 되기까지 꼬박 1년이 걸렸다.

이제는 누나의 킥보드에도 오른다. 천천히 달릴 때는 꽤 즐겁다. 걷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 산책길에서 받는 친구들의 부러운 시선, “강아지가 보드를 타다니 처음 본다”는 사람들의 놀란 표정. 모두가 나를 신나게 한다.


혹시 내가 스스로 보드를 밀며 바람을 가르는 모습을 상상했다면, 그건 멈추자.

그런 장면은 SNS 영상 속에서나 가능하다. 나는 여전히 빠른 속도가 두렵다. 하지만 이제 균형 잡는 법쯤은 알려줄 수 있다. 앞발은 데크 앞쪽 1/3, 뒷발은 뒤쪽 1/3. 발은 평행하거나 살짝 대각선. 그게 나만의 안정 구도다. 바람이 불어와도, 길바닥이 살짝 기울어져도, 이 자세면 버틸 수 있다.


새로운 걸 배우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모든 준비를 마친 뒤에 시작하려 한다면 영영 못할 수도 있다. 해보다가 그만뒀다고 실패는 아니다. 그 과정에서 ‘이건 내 길이 아니다’를 알았으니, 그것 또한 배움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실패할 기회도, 성공할 기회도 없다.


나는 해보기로 했고, 그래서 해냈다.

그 과정에서 배움의 즐거움을 알았고, ‘나도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무엇보다 가족들이 “잘했다”라고 말해줄 때마다, 내가 가치 있는 존재라는 걸 느꼈다.


보드를 타며 얻은 건 기술보다 더 귀한 것이었다.

가족들과 함께한 시간, 웃음과 온기, 그리고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 믿음. 그 모든 순간이 내 마음속에 선명하게 새겨졌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보드 위에서 세상을 배운다.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완벽함이 아니라 시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가족이 곁에 있다면, 나는 언제든 올라설 용기가 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