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고상하고 우아하게 먹으라고?

고상하고 우아하게 먹는 법

by 소담



이 글은 반려견인,
라울이의 시선에서 바라본 세상 이야기입니다

【 내 이름은 라울, 나는 반려견이다 】
2부- 웃음과 사건이 있는 일상
열여섯 번째 이야기-고상하고 우아하게 먹으라고?


보기와는 달리, 내가 잘할 수 있는 것들이 참 많다. 그렇다고 지금 하나하나 나열하진 않겠다. 하지만 그중에서 내가 생각해도 정말 대단한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고상하고 우아하게 간식을 먹는 일이다.


‘개가 무슨 고상하고 우아함이냐’ 싶겠지만,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대부분의 개들은 간식을 보는 순간 눈빛이 반짝이고, 집사가 ‘먹어’라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달려든다. 아니면 그 말이 끝나자마자 총알같이 집어삼킨다. 그러나 나는 다르다. 나는 개 중의 개, 품격 있는 개. 바로 고상하고 우아하게 먹을 줄 아는 개다.


사실 처음부터 이런 것은 아니었다. 윤 집사가 어느 날 불쑥 이렇게 말했다.

“라울, 고상하고 우아하게 먹어야지.”


그 순간 나는 깊은 혼란에 빠졌다. ‘고상하고 우아하게 먹으라는 게 도대체 어떻게 먹으라는 것이지?’ 나는 개다. 개는 개답게 먹는 게 본분 아닌가. 아무리 내가 뇌섹견이라지만, 그건 좀 난해했다.


그래서 처음엔 별의별 행동을 다 해봤다. 뒷걸음질을 치며 물러나 보기도 하고,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고 얌전히 앉아 보기도 했다. 하지만 윤 집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여전히 같은 주문이 반복되었다. “라울, 고상하고 우아하게.”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나는 깨달았다. 윤 집사가 그런 말을 하는 건 언제나 내가 간식을 성급하게 먹으려 들 때라는 사실을. 눈치를 살펴보니, 그 주문은 결국 “천천히 먹어”라는 뜻이었다.


그래서 나는 과감히 방식을 바꿨다. 간식을 받아도 재빨리 입을 다물지 않고, 마치 나무늘보처럼 아주 느리게 움직였다. 물론 나무늘보보다는 조금 빠르게. 그렇게 조심스럽게 간식을 받아 들고, 한입 한입 꼭꼭 씹는 시늉을 했다. 드디어 윤 집사에게서 ‘통과’ 사인이 떨어졌다. 내가 그 어려운 주문을 해낸 것이다.


그날 이후 윤 집사는 나에게 간식을 줄 때마다 주문처럼 말했다. “라울, 고상하고 우아하게.” 흥미로운 건, 윤 집사도 그 말을 할 때는 일부러 속도를 늦춰서 천천히 말한다는 점이다. 마치 주문이 아니라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이건 단순히 내가 천천히 먹는 연습이 아니라, 윤 집사와 내가 함께 만들어내는 작은 의식이라는 것을.


내가 그 ‘고상하고 우아한 간식 먹기’를 완성했을 때, 윤 집사가 한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라울, 봐봐. 네가 천천히 먹으니까, 나도 안전하고 너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잖아. 참 잘했어.”


그제야 알았다. 윤 집사가 왜 그렇게 고상함을 강조했는지. 내가 성급히 입을 벌리면 혹시라도 손가락이 물릴까 봐 걱정했던 것이다. 동시에, 나 스스로도 간식을 더 맛있게, 품격 있게 즐기길 바랐던 것이다.


이제는 내 나름의 방식이 있다. 간식을 눈앞에 두고도 허겁지겁 달려들지 않는다. 코끝으로 향을 먼저 맡고, 천천히 눈을 마주친다. 집사가 준비한 그 마음을 먼저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야 한입에 물고, 꼭꼭 씹는다. 마치 고급 만찬을 음미하는 듯이.


이 새로운 방식 덕분에 우리 사이에는 작은 변화가 생겼다. 윤 집사의 손길은 더 부드러워졌고,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한층 더 따뜻해졌다. 나는 간식을 먹을 뿐인데, 그 시간은 어느새 둘만의 대화가 된다.


가끔은 수행원도 이 장면을 지켜본다. 수행원은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라울, 진짜 사람보다 더 예의 바른데?” 그럴 땐 내가 조금은 뿌듯하다. 개도 충분히 예의를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낸 듯해서.


물론 유혹은 여전히 있다. 어떤 간식은 향만 맡아도 정신이 아득해진다. 그럴 때면 온몸이 달려들고 싶어 안달한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고상하고 우아하게 먹는 법을. 그 법칙을 지킬 때 윤 집사가 웃고, 나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세상에 수많은 개들이 있지만, 과연 몇이나 ‘고상하고 우아하게 먹기’에 성공했을까? 나는 그 소수에 속한다. 그래서 자랑스럽다.


오늘도 간식 시간이 다가오면 나는 잠시 호흡을 고른다. 그리고 윤 집사의 목소리를 기다린다. “라울, 고상하고 우아하게.”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나는 다시 한번 품격 있는 개로 거듭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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