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가족순례를 하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

가족순례, 발끝에서 시작되는 기도

by 소담


이 글은 반려견인,
라울이의 시선에서 바라본 세상 이야기입니다

【 내 이름은 라울, 나는 반려견이다 】
3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열여섯 번째 이야기-고상하고 우아하게 먹는 법



성지순례는 단순히 길을 걷는 여행이 아니다. 그것은 내적 평화와 치유를 찾아가는 여정이며, 신앙의 근원지를 직접 밟으며 영적 깊이를 더하고, 새 출발을 결심하게 되는 과정이다.


나에게도 그런 순례가 있다. 다만 내가 찾는 곳은 거대한 성당도, 이름난 산사도 아니다. 내가 하는 ‘가족순례’는 그저 발걸음을 옮기는 여행이지만, 내겐 ‘발로 하는 기도’에 가깝다. 순례의 길 위에서 가족을 향한 마음은 단단해지고, 영혼은 조금씩 풍요로워진다.


어쩌면 고작 가족과 함께하는 짧은 여정에 이렇게 거창한 의미를 붙이는 게 우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겐 진지하고 특별한 의식이다. 하루를 여는 첫걸음부터, 그 끝자락까지 나는 이 순례를 멈추지 않는다.


아침, 윤 집사의 손끝이 내 등을 부드럽게 깨운다. 온기가 아직 등줄기에 남아 있는 채로 나는 먼저 누나의 방 앞으로 향한다. 닫힌 문 앞에 조용히 기대서면, 고요한 공기 속에서 미세한 숨결이 느껴진다. 그 숨은 어젯밤의 피곤과 오늘의 시작 사이를 잇는 다리 같다.

“잘 자고 있어? 별일은 없었지?”

나는 마음속으로 묻는다. 문을 열어볼 수 없지만, 귀 끝에 닿는 그 잔잔한 숨소리만으로도 안도감이 가슴을 채운다. 그제야 나는 발길을 돌려 윤 집사 곁으로 돌아간다.


하루의 끝도 비슷하다. 먼저 잠든 아빠의 방 앞에 서서 규칙적인 호흡을 확인한다. 거실 조명이 하나둘 꺼지고, 윤 집사가 이불속에서 몸을 웅크린 채 고른 숨을 내쉴 때, 나는 마지막으로 늦게 돌아온 누나를 기다린다. 문이 ‘딸깍’ 열리고, 그녀가 조용히 방 안으로 들어가 이불속에 몸을 묻는 순간까지. 그제야 나의 하루도 닻을 내린다.


이 순례는 오래된 습관이다. 형이 함께 살던 시절에도, 나는 늘 형의 방문 앞에 서서 귀를 기울였다. 방 안에서 뒤척임이나 숨소리가 들리면 마음이 놓였다. 형이 독립해 멀리 살게 된 지금도, 가끔 집에 오는 날이면 나는 여전히 그 문 앞에 선다. 문틈 사이로 스미는 온기 하나에도 마음은 잔잔한 평화를 얻는다.


사랑하는 이가 잘 있는지, 그저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진다. 나에게 가족순례는 바로 그 안도감을 주는 시간이다. 발소리와 숨소리가 전하는 평온함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위로다.


가족을 하나하나 확인하는 건 단순한 습관이 아니다. 주인이 곁에 있다는 걸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불안의 스위치는 꺼지고 애착의 스위치가 켜진다. 그때 내 몸속에서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줄고, 행복을 만드는 옥시토신이 흐른다.


윤 집사와 가족은 늘 약속된 시간에 산책을 나가며, 내게 하루의 예측 가능성을 만들어 주었다. 작은 몸짓에도 내 마음을 읽어주는 감정적 공감을 보여주었고, 실수를 했을 때도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먼저 다독여 주었다. 낯가림이 심한 나를 위해 시간을 들여 기다려 준 것도 그 연장선에 있었다.


이렇게 쌓인 경험들은 예측 가능성, 감정적 공감, 안전함이라는 세 기둥이 되어 우리의 애착을 단단히 붙잡았다.


그 애착은 내 삶을 바꾸었다. 마음은 평온해졌고, 불안과 외로움은 줄었다. 가족의 존재만으로도 위안을 얻었고, 힘든 순간이 와도 관계 안에서 치유를 경험했다. 덕분에 다른 강아지들과도 쉽게 신뢰를 나눌 수 있었고,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힘도 생겼다.


내 발걸음은 단순히 집안을 오가며 발자국을 남기는 것이 아니다. 사랑을 확인하는 가장 확실한 의식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어가는 이 순례는 나를 평온하게 하고, 우리가 함께라는 사실을 되새기게 한다.


내일 아침이 오면, 나는 다시 가족의 방 앞에 설 것이다. 숨결을 확인하고, 마음속으로 안부를 묻고, 사랑을 새긴다. 그 길 위에서 나는 오늘도, 내일도, 가족의 무사함을 기도할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언제나 내 발끝에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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