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울이의 시선을 통해 배운 삶
이 글은 반려견인,
라울이의 시선에서 바라본 세상 이야기입니다
【 내 이름은 라울, 나는 반려견이다 】
5부-작별과 마무리
서른 번째 이야기-에필로그, 윤 집사
라울이와의 시간은 내 삶의 속도를 바꾸었다.
라울이의 하루는 단순했다.
좋으면 꼬리를 흔들고, 싫으면 고개를 돌리고, 궁금하면 코를 들이밀고, 피곤하면 아무 데서나 드러누웠다.
그 단순함 속에, 내가 잊고 지내던 삶의 본질이 있었다.
처음 라울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을 때는, 그저 기록의 의미였다.
사진처럼 한 장면을 붙잡아 두고 싶었다.
하지만 한 편, 두 편이 쌓이자 깨달았다.
라울이가 내게 가르쳐준 건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시선’이었다.
그의 눈과 코와 발걸음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세상의 층위가 드러났다.
라울이는 계절을 달력 대신 코로 읽었다.
봄이면, 갓 깨어난 흙 속에서 퍼져 나오는 부드러운 냄새를 맡으며 길가의 들꽃들을 스쳤다.
어느 날은 꽃망울이 막 터진 벚나무 아래에서 한참을 멈춰 서더니, 바람에 섞인 꽃가루 냄새를 오래도록 들이마셨다.
그 순간, 나는 그저 ‘봄이구나’가 아니라, ‘라울이가 느끼는 봄’이 어떤 향인지 맡아보려 애써 보았다.
여름이면 장마가 오기 전의 묵직한 습기 속에서 귀뚜라미 울음을 찾아 귀를 기울였다.
비가 쏟아지던 날, 나는 우산을 기울여 라울이의 등을 가려주었지만, 라울이는 물방울이 풀잎 끝에서 흘러내리는 모습을 더 오래 보고 싶어 했다.
그 빗속에서 라울이는 서두르지 않았고, 나는 그 느린 발걸음을 억지로 끌어당기지 않았다.
가을이면, 마른 낙엽 위를 걸을 때마다 ‘바스락’ 소리를 즐겼다.
바람이 불면 라울이는 낙엽을 쫓아가다 멈추고, 코끝으로 그것을 살짝 건드렸다.
마치 떨어진 잎과 인사를 나누는 듯했다.
그 옆에서 나도 처음으로, 발끝 아래의 소리를 귀 기울여 들었다.
겨울이면 눈이 내리기 전의 고요를 누구보다 먼저 감지했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참을 서 있는 라울이를 따라 나도 하늘을 보았다.
그리고 눈이 내리기 시작하자, 라울이는 새하얀 땅 위에 첫 발자국을 남겼다.
그 작은 발자국이 나를 아이처럼 설레게 했다.
라울이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새 장난감을 물다 놓쳐도, 보드를 타다 바닥에 헛디뎌도, 금세 다시 시도했다.
한 번은 공을 쫓다 의자 다리에 부딪혀 주춤했는데, 금방 다시 공을 물고 돌아왔다.
그 모습은 내가 얼마나 실패 앞에서 머뭇거리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었다.
라울이는 몸짓으로 말했다.
“넘어져도 괜찮아. 그냥 다시 달려가면 돼.”
라울이는 멈추는 법도 알았다.
길가 풀잎 사이에 코를 묻고 한참을 서 있거나, 창문 앞에서 바람이 바꿔놓은 세상의 냄새를 오래 맡았다.
나는 늘 ‘빨리 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라울이는 멈춤이야말로 다음 발걸음을 단단하게 만든다는 걸 몸으로 보여줬다.
28편의 글을 다 쓰고 나니,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이 얼마나 넓고 깊었는지 새삼 느껴진다.
그저 ‘반려견과의 생활’이라고 불렀던 것이, 이제는 나를 바꿔놓은 ‘생활 철학’이 되었다.
라울이의 시선으로 보면, 사소한 것이 더 이상 사소하지 않고, 평범한 것이 더 이상 평범하지 않다.
언젠가 라울이가 내 곁을 떠날 날이 올 것이다.
그날이 오면 나는 이 글들을 다시 펼쳐 읽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꼬리를 흔드는 라울이를 다시 만날 것이다.
그때 나는 울겠지만, 웃기도 할 것이다.
왜냐하면 라울이가 내게 남긴 건 단지 추억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이니까.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바란다.
당신 곁에 있는 존재와의 시간을 달력에만 적지 말고, 마음에 새기기를.
냄새로, 소리로, 온기로, 그 순간을 오래 간직하기를.
그리고 라울이 처럼, 오늘을 전부 살아내기를.
당신의 하루 속에도, 계절을 알려주는 라울이 같은 존재가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