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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앞치마를 두른 날

통과의례를 치르다

by 소담

나는 오랫동안 논술교사로 일했다. 수업할 때 나의 모습은 늘 단정한 치마 차림이었다. 교사라는 직업은 학생들 앞에서 보이는 모습이 곧 메시지가 되기도 했기에, 나는 옷차림 하나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깔끔한 무릎길이의 원피스, 단정하게 손질한 머리가 나의 일상적인 교사 복장이었다. 그래서 바지는 집에 한두 벌 있는 게 전부였고, 특별한 날이 아니면 꺼내 입지도 않았다.


그런데 장애인 표준사업장에 첫 출근을 한 날, 나는 여느 때처럼 치마를 입고 나갔다. 낯선 공간에서 나를 단정하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무엇보다 그것이 내게는 지금까지 나의 ‘일하는 옷차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출근하자마자 들은 말은 예상 밖이었다.

“여기서는 바지를 입으셔야 해요.”


순간 당황스러웠다. 단정하게 입은 치마 차림이 왜 문제가 될까 싶었다. 하지만 곧 설명을 듣고 고개가 끄덕여졌다. 카페라는 공간은 생각보다 위험 요소가 많았다. 뜨거운 물이 튀기도 하고, 선반에 다리가 긁힐 수도 있었다. 치마 차림은 활동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안전에도 취약했던 것이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수업에서의 기준이 여기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결국 퇴근 후 급하게 바지를 사 입었다. 오랜만에 바지를 입으니 몸이 조금 어색했지만, 다음 날 카페에 들어설 때는 마음이 한결 편안했다. 걷기도 수월하고, 몸을 움직이는 데 훨씬 자유로웠다. 치마를 입었을 때의 움직임이, 바지를 입으니 훨씬 자연스러워졌다.


그리고 그 위에 둘러맨 갈색 앞치마. 그것은 나에게 또 다른 상징처럼 다가왔다. 그동안 앞치마는 집에서만 두르던 물건이었다. 아들과 딸에게 간단히 요리를 해줄 때, 주방에서 허리를 감싸던 것이 앞치마다. 그런데 이제는 일터에서, 그것도 동료들과 함께하는 공간에서 두르게 되니 전혀 다른 기분이 밀려왔다. 집에서는 가족을 위한 사랑의 도구였다면, 카페에서는 동료와 손님을 위한 책임의 도구가 된 것이다.


거울 앞에 선 나는 잠시 낯설게 웃었다. 교사의 모습도, 엄마의 모습도 아닌, 새로운 나의 얼굴이 비쳤다. 작은 천이었지만, 내 삶을 바꾸는 상징이 되었다. 그것은 내가 새로운 배움의 장에 들어섰다는 증표였다. 커피머신 앞에 선 나를 보호해 주고, 동시에 나의 정체성을 새롭게 규정해 주는 옷이었다.


앞치마를 두른 채 처음으로 커피를 내렸던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뜨거운 물이 기계에서 쏟아져 나오고, 진한 원두 향이 공기를 가득 메웠다. 광고 카피처럼, 9 기압에서 에스프레소를 내렸다. 두 손으로 잡은 포트가 묵직했지만, 앞치마 하나가 내 마음을 든든히 붙잡아주는 것 같았다. “이제 나는, 카페에서 일하는 사람이다.”라는 묘한 소속감이 마음에 자리 잡았다.


앞치마는 나를 보호해 주면서도, 동시에 나를 새롭게 만들어주었다. 교사에서 바리스타로, 봉사자에서 동료로, 그리고 손님을 맞이하는 직원으로 변화시켰다. 역할은 달라졌지만, 본질은 같았다. 누군가를 돕고, 함께 성장하는 자리였다. 앞치마는 그 어디쯤 서 있는 나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그날의 앞치마는 단순한 복장이 아니었다. 새로운 세계로 들어서는 통과의례였다. 치마 차림에서 바지 차림으로, 집에서의 앞치마에서 직장의 앞치마로, 나의 삶은 그렇게 작은 옷 한 벌과 천 조각 하나로 달라졌다.


지금도 출근하면 앞치마를 두른다. 때로는 커피 얼룩이 지기도 하고, 때로는 설거지 물방울에 젖기도 한다. 하지만 그 얼룩 하나하나가 내가 걸어온 시간을 증명한다. 그날 처음 앞치마를 두르던 순간의 설렘은 여전히 내 가슴 어딘가에 남아 있다.


앞치마를 두르는 순간, 나는 오늘도 웃고, 실수하며, 배우고, 함께 성장하겠다는 약속을 한다. 그 다짐을 품은 채 나는 다시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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