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3. 식탁 위의 거리감

존재 자체만으로 존중받아야 한다

by 소담


출근 첫날의 점심시간이 찾아왔다. 새로운 환경에서 맞이하는 첫 식사는 언제나 낯설다. 식판을 들고 줄을 서서 음식을 받고, 자리를 찾는 그 짧은 순간에도 마음은 괜히 긴장한다. 누구와 함께 앉아야 할지, 대화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미묘한 눈치가 오가는 자리다.


그날 나와 함께 마주 앉은 동료는 손발을 많이 떠는 직원이었다. 숟가락을 들어 올릴 때마다 밥알이 식판 위로 흘러내렸고, 국을 뜨면 국물이 가장자리로 떨어졌다.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도 온전히 들어가지 못해 입가에 붙거나 턱으로 흘러내리곤 했다.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제 입에는 맛있네요. 반찬은 입에 맞으세요?” 그렇게 평범한 식탁의 대화를 나누는 척했지만, 사실 제대로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나는 비위가 약한 편이다. 눈앞에서 음식이 흘러내리고 흩어지는 장면은 내 몸을 긴장시켰고, 목구멍은 쉽게 음식을 삼키지 못했다. 그러나 동시에 내 마음은 복잡했다. ‘이 정도도 참아내지 못하는 내가 너무 나약한 건 아닐까?’라는 자책과, ‘저 친구가 일부러 그러는 것도 아닌데…’라는 연민이 뒤섞였다.


식사 도중 그 동료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제가 손을 떨어서… 불편하시죠?”


그 말은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그때마다 나는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 마음속은 이미 복잡한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었다. 불편하지 않다고 단정 지을 수 없었고, 그렇다고 불편하다고 솔직히 말할 수도 없었다. 나는 그 사이 어딘가에 서 있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나는 아직도 많이 부족한 사람이다. 장애를 이해한다고 생각했지만, 눈앞에서 마주한 현실 앞에서는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다. 머리로는 그 상황이 그의 의지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오히려 내 앞이어서 더 긴장했을 수도 있었다. 실제로 함께 일을 할 때는 그렇게 심하게 떨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해한다고 아는 것과,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그날의 점심은 내게 하나의 질문을 던졌다. ‘나는 진정으로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대답은 솔직히 ‘아직 아니다’였다. 그 인정은 부끄럽지만, 동시에 나를 성장하게 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그날 이후 나는 식탁을 대하는 태도를 조금 바꾸었다. 흘리는 밥알이나 국물보다, 그 친구가 내게 건네는 말에 더 집중하려 했다. “오늘 아침엔 조금 일찍 일어났어요.” “집에 가면 강아지가 기다려요.” 그 소소한 대화에 귀를 기울이니, 식판 위의 풍경은 점점 배경으로 물러나고, 눈앞의 사람이 더 크게 보이기 시작했다.


점심 식탁 위에서 나는 인간의 존엄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존엄은 완벽한 모습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흘리고 떨어지는 모습 속에서도 여전히 존중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서 시작된다. 내가 조금 불편함을 감내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내 앞에 앉은 사람이 ‘그래도 괜찮다’는 눈빛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지금 돌아보면 그날의 거리는 물리적인 간격이 아니라, 내 마음이 만들어낸 벽이었다. 그 벽을 허물기 위해선 누군가의 용기와, 나의 솔직한 성찰이 필요했다. 식탁 위의 작은 거리감이 사실은 내 내면의 거리감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시간이 걸렸지만, 그것이 내 성장의 시작이었다.


지금은 그 직원이 회사를 떠나 더 이상 내 맞은편에 앉아 있지 않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식탁에 마주 앉았던 그날의 눈빛을 기억한다.

흘리고 떨어지던 모습조차 존중받아야 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 순간의 불편함이 나를 더 깊이 성장시켰다.


그 직원이 내게 남겨준 자리는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조용한 가르침이었다.

나는 오늘도 새로운 동료와 마주 앉을 때면, 그때의 식탁을 떠올리며 마음을 고른다.

결국 그 시간이 내게 남긴 것은 불편이 아니라, 존엄을 바라보는 또렷한 눈이었다.



keyword
이전 02화2. 출근 첫날의 서툰 악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