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배우다
첫 출근을 앞둔 전날 밤, 나는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두근거리는 설렘과 알 수 없는 긴장이 뒤섞여 눈을 감아도 마음이 계속 깨어 있었다. ‘내일은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나는 잘할 수 있을까?’ 장애인들과 함께 일한다는 것이 낯설지는 않았지만, 막상 처음으로 직장에서 그들을 동료로 맞이해야 한다는 사실은 내 가슴을 두드렸다. 봉사활동에서 만났던 장애인들과는 다른 차원일 것 같았다. 내게 주어진 역할은 단순히 돕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직원이자 동료였기 때문이다.
새벽이 지나고 아침이 밝아왔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자 고소한 커피 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낯선 공간이었지만, 커피 향 하나만큼은 친근했다. 내가 직접 내린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조금은 든든해졌다.
그곳에서 처음 마주한 직원들은 대부분 스무 살을 갓 넘긴 젊은이들이었다. 싱그럽고 활기찼지만, 동시에 약간은 어색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 끼어드는 내가 낯선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새로운 환경 속에서 나 또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잠시 머뭇거렸다.
그날 만난 이들 가운데 특히 기억에 남는 친구가 있다. 22세의 청각장애를 가진 직원이다. 그는 나와 눈을 잘 마주치지 못했고, 말수도 적었으며 몸을 잔뜩 웅크린 듯한 모습이었다. 처음에는 그가 말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계산대 업무나 포스기 사용에 대해 물어보았지만 머뭇거리기만 했다. 어쩔 수 없이 팀장으로 있던 친구에게 부탁해 마감 처리를 했다. ‘괜히 더 물어봤다가 당황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있었다. 그때는 계속 물어보지 않는 것이 배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뒤 알게 된 사실은 전혀 달랐다. 그 직원은 포스기 업무를 능숙하게 해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더구나 나를 위해 일부러 계산대를 가르쳐주려고 다가왔던 것이었다. 단지 나를 대하는 방법을 몰라서 쭈뼛거렸을 뿐인데, 나는 그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못할 거야”라고 단정 지어버린 것이다. 팀장에게 도움을 청했던 순간이 오히려 그 직원에게 상처가 되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몹시 미안했다.
돌이켜보면 그날의 나 역시 서툴렀다. 장애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보다, ‘못한다’는 선입견으로 덮어버린 것이다. 사실은 나 역시 장애인을 대하는 방법을 몰랐다. 그 직원이 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눈을 피한 것처럼, 나도 그 직원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몰라 눈을 피한 셈이다.
다행히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는 내가 커피를 내리는 방법을 물어볼 때마다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직접 몸으로 시범을 보여주곤 했다. 말보다 행동으로 마음을 전하는 법을 나는 그에게서 배웠다. 이제는 오히려 그 직원이 내 든든한 동료가 되었고, 나 역시 처음의 미안함을 솔직히 고백하며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첫 출근날의 악수는 사실 어색하고 불완전했다. 손끝만 스치듯 가볍고 서툴렀다. 하지만 그 악수는 우리가 서로를 알아가기 시작한 첫 단추였다. 악수는 단순히 손을 맞잡는 행위가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인사였다. 그날의 악수는 비록 미숙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진심을 담은 악수로 바뀌어 갔다.
그날 내가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이것이다. ‘장애는 한계가 아니라, 우리가 서로를 대하는 방법에 대한 질문이다.’ 나는 그 질문에 아직 완벽한 답을 갖고 있지 않다. 다만 그날의 미안함을 발판 삼아, 이후 10년 동안 나는 끊임없이 배워왔다. 상대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어떻게 존중할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함께 성장할 것인지 말이다.
커피 향이 여전히 코끝을 스친다. 내가 직접 내린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지만, 그보다 더 큰 행운은 첫 출근날의 서툰 악수에서 시작된 관계들이 지금까지 내 곁에 있다는 것이다. 그때의 설렘과 긴장은 이제 따뜻한 추억이 되었고, 나는 오늘도 그 추억 위에서 새로운 하루를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