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전토끼 Oct 12. 2024

거절, 익숙하지만 낯선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거절은 여전히 달갑지 않다 


인생을 살면서 처음 겪었던 거절은 아마도 대학입시였을 것이다.

수험번호를 조회했을 때, "불합격하셨습니다.."라는 문구로 시작했던 거절이 인생 첫 거절이었다. 



대학만 가면 모든 것이 끝날 줄 알았던 순진한 애송이는 취업이라는 관문에 다다르게 된다.

새내기 시절부터 "선배들이 취업이 안된다"라는 교수님의 말을 들어서인지, 정말 빠릿빠릿하게 취업준비를 했다. 그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게, 생존을 위해 모든 사활을 취업준비에 걸었다.



막상 맞닥뜨린 취업시장은 매서웠다. 스펙 5종, 7종.. 과 같은 단어들이 온라인 게시판을 도배하면서, 취업 경쟁의 치열함을 직접 느낄 수 있었다. 취업스터디를 하면서 지원 원서를 하나 둘, 나중에는 엑셀로 정리해야 할 만큼 수많은 기업에 지원했다. 시쳇말로 좋소라고 하는 기업들이라고 해도 면접을 보러 오라고 하면, 치마 정장을 입고, 무릎까지 쌓인 눈을 헤치면서 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는 정말 거절이 일상이었다. 서류탈락, 인적성 탈락, 면접 1차, 2차 혹은 최종 탈락 등등처럼 말이다. 



이런 거절의 추억은 최근 내 책을 독립서점에 입고요청을 하면서 생생한 일상으로 다가왔다. 책방의 사정, 사장님의 취향 등등 다양한 이유로 거절메일을 받았다. 거절메일을 막상 확인하고 나서는 "그래, 그럴 수 있지"라고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마음 한편이 씁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놀랍게도 이제 나이를 좀 먹었으니 이러한 거절쯤이야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는데, 거절 메일을 받을 때마다 마음에 미세한 생채기가 나는 것 같다. 



우연히 책 <호명사회>의 송길영 작가의 영상을 유튜브에서 봤는데, 앞으로의 사회는 모두의 이름이 불리는, 조직이 작아지고 자신의 이름만 남는 시대가 온다고 한다. 잠시나마 영상을 보며 든 생각은 "나의 이름을 걸고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은 내 결과물에 책임을 져야겠다는 온전한 다짐이 필요하겠다"였다.



그렇기에 거절은 내 이름을 걸고 하는 직업세계에서는 어찌 보면 숙명과 같은 존재이다. 

그렇다고 해서 거절이 달갑거나 익숙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나만의 길을 매끄럽게 다듬어줄 수 있는 존재 정도는 되는 것 같다.



모든 작가 혹은 예술가들이 그러하듯이 처음부터 찬사를 받는 작품은 거의 없다. 시간이 지나면서 혹은 어떠한 계기로 인해 작품이 재평가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모든 대중에게 찬사를 받을 수 없는 것 역시, 작품의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처럼, 내 작품에 대한 수많은 거절은 작가로서 자신의 작품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갖게 해 주고, 세상에는 다양한 의견의 스펙트럼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요소가 아닐까 싶다.



생전에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가혹한 평가 때문에 불안감을 느꼈던 반고흐. 하지만 사후의 그의 작품에 대한 평가는 생전과는 정반대였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반 고흐 박물관에서












헤더이미지 @Pexels, Ann H






이전 07화 '규정'을 짓는다는 것은 때론 주홍글씨가 될 수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