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밟힌 자들을 위한 레퀴엠

정찬 장편소설 <발 없는 새>

by 반전토끼


우연히 영국 공영방송 BBC와 백발이 성성한 한 동양인 할아버지의 인터뷰를 유튜브에서 보게 됐다.

그 영상의 주제는 다름이 아닌 <홍위병의 고백>이었다. 홍위병은 红卫兵(Hóng Wèi Bīng , 홍웨이빙), (Chinese) Red Guards로 불리며, 사실상 마오쩌둥(이후 마오)의 정치 사조직이다. 대약진 운동(산업부흥정책) 이후 중국 사회는 빈곤과 가난에 시달렸으며, 이를 계기로 마오는 개혁파(류사오치, 덩샤오핑 등)에 의해 실각할 수 있다는 정치적 위기에 휩싸인다. 이러한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 홍위병이었다. 마오와 그의 측근(대표적인 인물: 마오의 부인 장칭)들이 마오를 신격화하고, 젊고 혈기 넘치는 홍위병들에게 완장을 채워주면서 마오의 정적을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문화 대혁명이라는 사건이 마오의 정치세력과 홍위병들이 합작해서 만들어낸 전대미문의 집단광기가 집약된 역사적 사건이다. 대학시절, 전공 수업에서 홍위병들이 자본가, 고위 공무원, 전통문화 예술인, 지식인 등을 반동분자로 몰아서 인민재판을 하며 무자비하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자신을 가르친 교수, 죽마고우, 자신의 형제와 부모에 이르기까지 서로가 서로를 밀고하면서 인민재판에서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반동분자라고 비난해야 하는 역사적 상황이 너무 잔인해 보였다. 최근에 인기를 끈 넷플릭스 드라마 <삼체>의 시대적 배경 역시 문화 대혁명 시기다.



스크린샷 2025-06-22 141000.png 당시의 반동분자라고 낙인찍힌 사람들은 우스꽝스러운 고깔과 자신의 죄목이 적힌 판을 걸고 홍위병들의 갖은 모욕과 폭력을 견뎌야 했다 출처 넷플릭스 코리아 드라마 <삼체>



당시 홍위병들은 옛 것은 모두 없애야 마땅한 것이며, 공산주의에 반하는 모든 것들(특히 부르주아 및 자본주의 사상 관련)은 모조리 없애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공산주의에 반하는 소위 반동분자들은 즉결 심판해서 처단해야 하며, 설사 그게 가족이라도 예외는 없다는 주의였다. 이런 극단적인 사상에 취해있던 할아버지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어머니를 당에 고발해서 어머니가 사형을 받아 집행당한 사실을 고백하며, 그때 나는 미친 사람이었다고 고백했다. 자신의 철없는 행동에 평생을 괴로워했던 그는 결국 중국을 떠나 미국으로 이민 와서 살고 있었다. 지금은 백발이 된 노인이지만, 여전히 그날 자신이 했던 행동들이 악몽으로 되살아나면서 과거의 그 시점에 갇혀 고통받고 있었다.



스크린샷 2025-06-22 135854.png 빨간 수첩을 들고 마오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는 홍위병들 출처 Vox
스크린샷 2025-06-22 135950.png 빨간 수첩을 성서처럼 지니고 다닌 한 홍위병의 모습 출처 Vox




한때 철없던 시절에 홍위병이 되어 자신의 어머니를 밀고해서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할아버지의 개인의 잘못된 선택일까? 아니면 그는 격량의 역사적 소용돌이에 던져진 폭력적인 시대의 희생양인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책 속에서 찾는다면 아래의 두 가지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권력은 개인의 실존을 허용하지 않는다
역사란 비극적 존재가 그리는 집단적 삶의 궤적



이 소설은 베이징 특파원인 주인공이 장궈롱(장국영)의 자살소식을 접하며 시작된다. 그 과정에서 난징포럼에서 베이징의 독거노인 웨이커씽씨를 만나게 되고, 단순히 재야 역사학자인 줄 알았던 그는 메이란팡(중국의 전설적인 경극 예술가)의 공연에서 연주를 맡았던 사람이며, 이러한 경력 때문에 장궈롱과도 인연이 있는 사이다. 그의 삶은 말 그대로 20세기의 굴곡 있는 역사적 사건(난징대학살, 문화 대혁명)을 몸소 견뎌야만 하는 운명이었다. 이후에는 중국계 미국인 아이리스 장(The rape of Nanking의 저자이자 역사학자 및 언론인)의 자살로 인해 소설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여 전개된다.



스크린샷 2025-06-26 140500.png 난징대학살에 대한 일본군의 만행을 가감 없이 고발한 작품, <난징의 학살>. 안타깝게도 저자는 일본 극우세력의 괴롭힘에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출처 Amazon




이처럼 작가는 현실과 허구를 넘나들면서 역사적인 집단 폭력과 대량학살(제노사이드, Genocide)에 대한 냉소와 무력감을 소설 속 등장인물들을 통해 표출하는 것처럼 보인다. 난징대학살을 중심으로 일본군이 저질렀던 만행, 위안부로 끌려가서 성노예로 살아야 했던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여성들, 문화 대혁명 때 정치적 목적으로 인해 이유 없이 희생된 사람들, 작가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허구를 섞어서 역사가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패왕별희>의 청뎨이 처럼 깊은 고독함과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낀 장궈롱의 자살과 책 출간 후에 일본 극우세력의 괴롭힘에 못 이겨 고속도로에서 권총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한 아이리스 장을 소설에 내세운 이유도 권력은 개인의 실존을 허용하지 않는다 점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홍위병과 일본군의 폭력의 공통점은 '신적 존재를 향한 숭배'라는 점이 와닿았다. 홍위병에서는 마오가, 일본군에서는 천황이 그리고 유럽으로 눈을 돌려보면 독일 나치의 히틀러가 있다. 작가는 이러한 광기 어린 신적숭배 때문에 한 사람을 벌레처럼 짓밟아도 되는지를 독자들에게 물어보고 있다. 결국, 이 책은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만든 허구적인 서사를 통해 20세기 참혹했던 집단 광기와 폭압적인 역사들을 섬세하게 되돌아보면서, '과연 인간의 존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작품 같았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처럼 현재 우리는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국지전과 그로 인해 가해지는 폭력과 대량학살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인간의 존엄성과 진정한 인간의 구원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줄 수 있는 책이 바로, 소설 <발 없는 새>이다.






<북끼리의 북큐레이션>

https://youtu.be/RXcAzxSRbqo




헤더 사진 출처 Vox

일요일 연재
이전 07화고독한 선장이라는 이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