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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문고 May 02. 2021

독립 일기(4)

나를 알아가기

최근에 찾은 나의 취향은 작은 식물을 크게 키우는 과정을 즐긴다는 것이다.


하나, 둘 화분들을 집에 들이다 보니 자연스레 홈가드닝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때맞추어 물을 주고 돌보면서 어느 하나 예쁘지 않은 것이 없구나. 이런 것들을 알아가는 중이다.    


집을 옮기기 전전까지만 하더라도 집에서 식물을 기르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잘 키울 자신도 없고 빛도 잘 들지 않는 공간에 식물을 데려 오는 것은 정말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솔직히 귀찮고 두려운 마음도 컸다. 내 한 몸조차 제대로 책임지지 못해서 매일 무기력하게 지내는 날이 많은데 다른 어떤 것을 돌보고 키워야 하다니. 그런 건 전혀 내 취향과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선물로 받은 화분 몇 개가 춥고 볕이 잘 들지 않는 집에서 얼마 못 버티고 죽어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직접 해 보지 않고서야 그 무엇도 확신할 수 없는 법이다. 내게도 그 법칙은 마찬가지라서 두려운 마음에 피했던 것을 막상 해 보니 생각보다 즐거웠다. 그때와는 다른 환경, 다른 마음가짐이니 결과가 다른 것도 당연하다.

  


불과 몇 개월 전의 나는, 초록 식물을 기르는 일처럼 일상의 소소한 기쁨은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다른 자잘한 걱정거리들이 너무나 크게 느껴져서 그런 일들이 나의 기쁨이 될 수 있다는 것조차 생각해 보지 않았다.


어쩌면 지금껏 내가 원하는 것을 제대로 생각해 보지도 않아서, 원했지만 간절하게 성취해 보지 않아서 답답하고 무기력해지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레짐작으로 이것도 잘 되진 않을 거야. 어차피 즐겁지 않을 거야. 라며 애써 나의 즐거움을 피해왔는지도.    


사실 막상 해 보니 생각보다 더 별로일 수도 있고 그저 그럴 수도 있겠지만 경험은 시간낭비라고 할 수 없다.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는 것보다는, 남의 말만 듣고 판단하는 것보다는 직접 체험해 보는 것이 짙게 남기 때문이다.     


살아오며 쌓인 자잘한 실패들 때문에 작은 경험조차 두려워했던 예전의 내가 이제는 안쓰럽다. 그리고 미안하다. 지금 알았던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그 시간들이 온통 잿빛일 필요는 없었을 텐데.  

   

만일 그때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일상의 작은 숨통은 언제는 트일 수 있다는 것을 꼭 말해주고 싶다. 들리지 않을 만큼 힘들겠지만 네가 걱정하는 그 모든 것들이 생각보다 별거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다.    


내 취향을 알아가는 요즘, 이제야 나를 알고 돌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무거워진 마음을 적당히 가볍게 만드는 법을 알게 되었고 내 기분을 다독이는 법을 알게 됐으니까.

과거와 미래에 머무느라 자꾸만 무거워지던 마음이 드디어 적당한 무게를 되찾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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