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향적인 사람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외향성을 가장하고 있지만 어쨌든 나는 내향적인 사람이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유년기의 나의 결핍은 학창 시절 내내 나를 아웃사이더로 만들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나는 높은 곳에서 친구들을 관찰하는 것을 즐겨했다. 담임선생님이 너무 말이 없고 친구 없는 내가 걱정되어서 엄마를 학교로 불렀을 정도였다. 나는 그런 선생님이 싫었다. 왜 내가 혼자 있고 싶다는데 혼자 있게 내버려 두지 않는지. 왜 억지로 친구를 만들어 주려 하는지. 나는 괜히 나에게 관심 가져 주려 다가오는 선생님이 부담스러웠다.
투철한 직업의식으로 나에게 단짝을 만들어 주려 했던 담임선생님의 가상한 노력에도, 나는 초등학교 1, 2학년 내내 외톨이였다. 사실 그것은 어린 자존심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다가오는 친구도 없었으니 외톨이를 자처했지만 외로움이 없지는 않았다. 다만, 어린 나이에도 누군가가 억지로 무리에 밀어 넣는 것은 싫었다. 엄마는 지금도 그 담임선생님을 참 좋게 기억하지만 난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당시의 선생님은 자신의 직업적 사명을 다했을 뿐이고, 그것은 지독히도 자기 위주의 봉사였다.
인생은 참 알 수 없다. 나는 전혀 예상치 못했으나 주변 사람들은 ‘너랑 어울려’라고 말하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 초등학교 교사. 1, 2학년 담임을 맡게 되면서 종종 나의 담임선생님을 떠올린다. 나도 그때의 그녀처럼 직업적 사명을 다 한다. 딱 하나 다른 점은, 나는 아이들에게 살갑게 다가가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부담스러웠다. 아이들이 나에게 다가와서 안기는 것이 싫었다. 나는 진정 아이들을 좋아하지만 과한 관심과 애정표현은 사양하고 싶었다. 때로 아이들이 나를 최고의 어른으로 보는 시선이 느껴질 때면 진짜 내 모습과의 괴리감에 괜한 자책을 했다. 어쩌면 다수에게 끼어 본 적이 없는 아웃사이더라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아픔이 나는 와 닿지 않았다. 솔직히 '그 정도가 왜 힘들어?'라고 생각했다. 내 어린 시절과 비교하면 충분히 풍족해 보이는 아이들이 힘들다고 하는 상황이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누군가의 아픔을 위로하고 다독이는 것에 나는 익숙지 못했다. 나는 나의 아픔마저 제대로 다독이지 못한 상태였다. 게다가 내 아픔을 털어놓고 위로받아 본 경험도 없기에 누군가의 아픔을 공감해야 하는 상황이 어색하기만 했다.
교사로 근무하지 몇 달 후, 동료 교사이자 선배들이 나에 대해 좋지 않은 이야기를 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어린애가 인사도 잘 안 한다고. 사실 나는 친하지 않은 사람이 인사하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부담스러웠고 차라리 모른 척 지나가는 게 편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도 그럴 거라 생각했다. 그 소문을 들은 이후, 나는 학교에서 웃는 연기를 시작했다. 나조차 예전의 나를 잊을 정도로 자주 웃었다. 소문은 불식됐고 내 사회생활은 꽤 원만해졌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이 직종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의 성격을 바꿔야 한다는 것을.
나는 내향적인 사람이다. 그리고 학창 시절 내내 아웃사이더로 살아왔다. 외향성이 강한 사람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는 어떤 문제가 생기면 혼자 정리가 되기 전까지는 말을 하지 않는다. 마음이 더 혼란스러워 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향적인 사람들은 정리되지 않은 온갖 얘기들을 마구 털어낸다. 다수의 사람들은 그런 성향들을 ‘솔직하다’, ‘털털하다’며 좋아한다. 그래서 나도 그렇게 하기 시작했다.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냥 마구잡이로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를 하면 되니까. 사람들이 나에게 ‘털털하다’, ‘성격 좋다’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잘은 모르지만 나 같은 사람이 참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연기하듯 살아가는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외향성을 가장해야 하는 내향적인 사람들이.
세상의 반이 외향적 사람들이라면 나머지 반은 내향적인 사람들일 텐데. 그 사람들은 사회생활을 어떻게 하고 있을까. 나처럼 평생 아웃사이더로 살아온 사람이 사회성이 필수적인 직업을 갖게 되면 어떻게들 버틸까.
나는 그들의 노하우가 궁금하다.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어쩌면 누군가 나의 이야기도 궁금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