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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문고 Dec 04. 2023

나의 난소생존기(15)

삶을 대하는 태도

4차 항암이 끝났다. 항암 3차 후 실시하는 ct검사에서 결과가 좋았고 수치도 정상범주라 4회로 항암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것도 결국 끝이 있었다. 그게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끝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4차 항암은 조금은 더 수월했다.


항암 후, 한동안 기력이 없고 또 식은땀이 흘렀다. 3일이 지나자 거짓말처럼 컨디션이 돌아왔다. 오랜만에 바닷가를 산책하고 살짝 한기가 돌 때쯤 카페로 들어갔다. 익숙한 루틴에서, 일상으로 돌아왔다는 안도감이 밀려들었다. 편안하게 숨을 쉬었다. 그러고 보니 여름에 시작된 수술, 항암 일정은 겨울이 되어 끝났다. 세 계절을 함께한 셈이다.


막연히 인생 2막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현실에 대한 도피처로 말이다. 내가 떠올린 인생 2막은 말 그대로 '막연히' 내가 원하는 것들이 적절히 버무려져 있는 안전하고 편안한 삶이었다. 불안과 고통 없이 편안하고 안락하게, 생존의 위협을 받지 않는 삶. 하지만 인생 2막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찾아왔다.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다소 험하게.


지난여름을 떠올려 보면, 온갖 감정을 날 것 그대로 느꼈던 감각이 먼저 떠오른다. 혹여 암일까 불안했고, 두려웠으며 암 진단을 받은 후 인생이 끝나는 것 같은 절망에 빠졌다가 신기할 정도로 고양된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5개월이 아니라 마치 5년은 지난 것 같다. 그만큼 나는 예전과 같은 삶의 양식을 고수할 수는 없게 됐다.


몸을 갈아 넣어 목표를 위해 달릴 수 없고,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을 마구 먹지도 못한다. 과한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혀 골몰하는 것도, 생각을 따라가다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것도 모두 무리다. 이제 그 무엇보다 내 몸과 마음이 편안한 삶을 지향해야 한다.


 '남들도 이 정도는 다 버티면서 살아.'

 '이 정도면 됐겠지.'


이런 생각들을 하며 위안을 얻고 나를 채찍질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생각에 정작 '나'는 빠져있었다. 그게 내게 맞는 삶인지, 내가 바라는 삶인지에 대한 생각은 진지하게 하지 못했다.

웃기는 일이다. 온갖 두려움과 불안에 사로잡혀 '어느 정도'의 기준에 맞는 삶에 대한 탐구는 그토록 절절히 했으면서.


항암의 끝은 암의 완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암을 한 번 겪었으면 평생 조심해야 한다. 어쩌면 경고등처럼, 나를 바로 세워줄 비상벨을 몸속에 지니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너무 비장하거나 절실하고 싶지는 않다. 여유롭고 편안하게, 나를 바로잡으며 생을 겪어나가고 싶다. 온 마음을 쏟고 싶을 정도의 즐거움을 쫓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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