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그동안 출산은 내게 의무였다. 내가 아이를 낳고 싶은지는 생각하지 않은 채, 어차피 언젠가 할거 그냥 해야겠다.라는 느낌이었다.
내년이면 생물학적으로 노산에 접어들기 때문에 압박감도 있었지만 임출육으로 한번 커리어를 쉬어가야만 한다면 나와 맞지 않는 직책자일 때 해야겠다-는 회피성도 있었다.
아이러니하게 아빠가 쓰러지고 나니, 아이를 낳아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얼마나 소중한 것임을 느꼈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결국 나이 들어 아플 때, 나를 간병해 줄 사람이 필요해서가 아니냐고.
결코 아니다.
정말 건강했던 아빠가 한순간에 쓰러져서 중환자실에 있는 걸 보니 많은 생각이 들었다. 삶은 유한한데, 이 안에서 내가 무엇을 위해 노력하고 사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승진을 하고, 자격증을 따면서 성취감은 올라갔지만 하나를 이루면 또 다른 하나를 이뤄야 하는 자기 착취의 과정이 반복되고 있었다. 지금은 젊어서 좋지만 나에게 쓰는 것 이상으로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고 그 아이가 커가는 것을 보는 건 삶의 또 다른 행복이겠구나-라는 걸 깨달았다. 이 감정을 간병하면서 느꼈다.
뇌경색 이후 어린아이가 된 것 같은 아빠를 보면서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고 싶어 하는 존재라는 걸 알았다.
그때 처음으로 승진 그리고 커리어가 무의미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내 시간과 정성을 쏟을 수 있는 게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많은 돈을 번다 한들 아프면 그게 무슨 소용일까?
그 돈으로 사랑하는 이의 병원비를 줄 수는 있겠지만 같이 보내지 않은 시간들은 남는 게 없다. 돈 벌어서 효도하면 되지-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돈보다 같이 보내는 시간이 중요함을 느꼈다.
그렇게 나는 아빠를 간병하는 동안 내 이름 석자가 아닌 누구 엄마로 살아가도 괜찮다고 처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