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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담 Jan 17. 2023

어설프고, 애매하게 착한 사람

착한 척 하는 사람이 오히려 더 힘들어요

2023년 1월

같은 날, 팀원 중 2명이 결혼하게 되었다.

1명의 결혼식이 먼저였는데, 이미 내적 손절을 한 상태였지만서도 전날까지도 결혼식에 못 가는 것에 대해서미안함을 느꼈다. 4년 넘게 한 팀에서 일해서 그런지, 나름 팀워크도 있지만 굳이 내가 손해보면서까지 가고싶지는 않았달까? 일이 있어서 못가는게 아니라 그저 가족 핑계를 대면서 못간 것이였으니까 말이다.


'나 왜 이러지?' 라는 생각에 친구한테 전화를 걸어 물었다. 

그동안의 관계는 이러했고, 1차적으로는 충남까지 가야하는 물리적 거리가 멀어서 싫었고, 그가 신혼여행으로 2주 비는 동안 내가 오롯이 대무를 해야하는데 이게 벌써 3번째라는 사실에 짜증이 난다고 이야기를 했다.


물론 그 누구도 의도치 않았겠지만 후배가 연차를 쓸 때마다 꼭 신상품 프로모션 / 사장님 보고용 전략회의 / 대형 컨벤션 기획 등의 행사가 생긴다. 담당자가 그 몫을 해야하지만 자리에 없으니 전 업무 담당자라는 이유로 나는 오롯이 3번,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이주일 넘도록 대무를 했다고 말했다.


내 일 때문에 바쁜 것이 아닌 온전히 남의 일 때문에 미팅에 들어가고 보고서를 쓰고 다른 회사와 협력하는 과정을 3번씩이나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과는 나의 것이 아니었다. 그저 난 그 기간동안 대무를 잘한 선배에 지나지 않았을테니까.


물론 내가 선배니까 해줘야하는 것도 맞다.

하지만 난 그게 내가 선배라는 이유로 후배가 나한테 자연스럽게 책임을 같이하자고 하는 게 싫다.

성과는 후배의 몫인데, 기획안은 왜 처음부터 함께 구상해야 하는가?

하물며 나는 후배에게 대무를 부탁한 적도 없고, 대무를 부탁하려면 설명이 길어지니까 말 자체를 섞지 않았다. 그리고 여행에서 복귀해서 뭐라도 줬으면, 그게 덜할텐데 나는 받은 게 아무것도 없다.

적어도 기프티쇼라도 줬으면 말로만 고생했어요-가 아니라 조금이나마 물질적 보상을 건넸으면 이렇게까지는 안했을 것이다.

친구 역시, 물질적 보상을 바라는 게 계산적인 게 아니라, 최소한의 도리로 표하는 건데 그 조차도 없는 후배라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자기도 집이 같아서 직장동료를 3개월 동안 태우고 다녔는데, 말로만 미안하고 고맙다고 하는 사람보다 기프티쇼 라도 하나 보내주는 사람이 더 신경쓰인다고 했었다.


그리고 또 한번 화를 북돋우는 일이 있었다.

"결혼준비 하느라 바빠 죽겠는데, 부장님이 일을 시켜서 스트레스 받는다" 고 했다. 주변의 내 친구들은 결혼준비가 뭐가 바쁜지 모르겠다고, 3개월이면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던 애들이라서 맨날 바쁘다고, 금요일마다 연차를 쓰고 가는 그 삶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연차를 쓰는 것이니 할말은 없지만, 모든 사람들이 금요일에 쓰고 싶은 마음을 배려로 참는게 아니던가? 바쁜 이유가 일은 뒷전이고 고작 마사지라니,,, 자신의 일조차 자기 담당이 아니라는 식으로 푸념하면서 개인사로 바쁘다고 말하는 걸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친구와의 통화를 끝내면서 결혼식에 못간 건, 미안하지만 그만큼 대무를 해주면 되는 부분이니 더 이상 미안해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어설프게 착한 인간으로 또 한번의 감정 격변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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