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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담 Jul 06. 2020

그냥 차를 버리고 싶다.

초보운전 극복기

 내가 아직 교복을 입고 등교를 하던 어린 학생일 때, 내 눈엔 운전하는 어른들이 그렇게 멋있어 보였다. 기름이 채워진 자동차만 있으면 언제든지 어디로든 떠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자유로움이 동경의 대상이었다. 당시 우리 집엔 차가 한 대도 없었다. 아빠가 면허가 있으시기는 했지만, 집에 차가 있었던 적은 없었다. 그래서 대중교통을 탈 일은 많았지만 자가용을 타 본적이 몇 번 없어서 어린 마음에 운전하는 사람들이 더욱 멋있어 보였던 것 같다.


 수능이 끝나자마자 운전면허학원에 등록했다. 우리 아빠는 나를 키우면서 위급한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 능력을 언제나 강조해왔다. 언젠가 물에 빠지면 혼자 헤엄쳐 나올 수 있어야 하니 수영을 배워야 한다며 등록시킨 수영 학원이 그러했고,  손에 우산 같은 것만 쥐고 있으면 치한을 물리칠 수 있다며 배우게 시킨 검도가 그러했고, 위급 상황에서 내게 어떤 자동차가 눈 앞에 있어도 타고 탈출할 수 있어야 한다며 면허는 1종을 따라고 강조한 게 그러했다. 그렇게 나는 살면서 타 본 적도 없는 트럭으로 스틱을 잡아가며 어떻게 어떻게 면허 시험을 합격했다.


  운전면허증이 나왔지만, 차가 없었기에 여전히 운전할 일은 없었다. 와중에 아빠의 누나, 즉 내게는 고모인 분이 차를 바꾸게 되었다며 아빠에게 자기 옛날 차를 몰아볼 생각이 없냐고 하셨고, 아빠는 차 같은 것 필요 없다더니 무척 좋아했다. 그렇게 고모부가 타다가 고모가 타던 그 차가 이제는 아빠 차로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아빠가 그 차의 세 번째 주인인 셈이다.


 이게 벌써 5년 전의 일이다. 그리고 몇 달 전, 아빠가 새 차를 구매하게 되면서 나는 그 역사가 깊은 차의 네 번째 주인이 되었다. 아빠가 차를 구매할 것이라고 내게 미리 말하지 않았기에, 내게는 일종의 서프라이즈였다. 언젠가 내게도 차가 생길 것이라는 로망은 있었지만, 몇 년째 면허가 장롱에 처박혀 있던 나는 운전자로서의 준비가 덜 되어있었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내 차가 생길 줄은 몰랐다.


 아빠는 내게 운전을 가르쳐야 한다는 막중한 임무를 가지고 내 자취방에 차를 가지고 내려오셨다. 일주일간의 합숙을 하기로 했다. 유튜브로 초보 운전을 위한 영상을 찾아보고 있으라는 아빠의 말을 나는 철저히 따랐다. 일주일 동안 자기 전에 유튜브로 열심히 운전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처음 운전대를 잡게 된 곳은 이마트 지하 주차장이었다. 차가 제일 없을 법한 평일 오픈 시간대를 골라 가서 아빠에게 핸들을 넘겨받았다. 시속 10km도 안 되는 아주 기어가는 속도로 출발하기 시작했는데, 그때는 그게 왜 이렇게 빠른 속도 같던지. 내 차가 아주 군사용 트럭이라도 되는 마냥, 누군가를 공격하지는 않을까 무서워서 아주 느리게, 천천히 기어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로 크지도 않은 그 이마트 주차장 한 바퀴를 도는 데 20분이 걸렸다.


 그렇게 지하 주차장을 이틀 동안 마스터하고, 학교 가는 길을 아빠와 정복하기 시작했다. 당시 내 자취방에서 학교까지는 차를 타면 7분 정도 걸리는 가까운 거리였다. 가는 길에 우회전 한 번, 그러고 한 번 더 우회전, 그러고 좌회전, 그 뒤로는 쭉 직진만 하면 되는 별 거 아닌 그런 경로였다. 그렇게 처음으로 '도로'라는 공간에 차를 가지고 나오게 되었는데(면허 딸 때 도로주행을 하긴 했지만, 이미 몸이 잊은 지 오래라서) 그 도로 위의 모든 차가 내게 위험한 존재들인 것처럼 느껴졌다. 옆을 지나가는 차는 언제 내 쪽으로 갑자기 튀어나올지 모르는 차, 앞에 가는 차는 갑자기 급정지를 하지는 않을지 잘 지켜봐야 하는 차, 뒤에 오는 차는 내가 속도가 느려서 욕할까 봐 신경 써야 하는 차, 정말 도로 위의 모든 차가 내 차만 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차선을 바꾸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 것처럼 느껴졌는지, 숨도 참은 채로 간신히 간신히 차선을 한 번 바꾸고 그랬었다.


 그러던 게 딱 일주일 정도 되니까 익숙해지더라. 여전히 조심조심 다녔고 도로 위가 익숙하지 않았지만, 사람은 정말 적응의 동물이라고 운전에도 적응이 되었다. 그렇게 한 달쯤 되었을 때, 접촉사고가 났다. 원래도 좀 좁은 골목길이었는데, 그 날따라 코너에 불법 정차된 트럭이 있었고, 내 뒤에는 차가 너무도 많았다. 이게 될까, 꺾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가 고민하는 그 짧은 순간에도 뒤에서 빵빵대는 다른 차의 경적 소리를 들으며 차를 골목으로 꺾었다. 그리고 내 차를 아주 시원하게 긁었다. 옆면이 다 긁혔다. 너무 놀랐고, 당황스러웠지만 일단 사고가 나면 정지하고 내려서 살펴봐야 한다고 들었기에 차를 가쪽에 정차하고 세웠다. 다행히 상대 트럭은 거의 긁히지 않았지만, 차주에게 연락을 드려야 하기에 번호를 찾고 있었다. 뒤에서 허허하고 누군가 웃으시는 소리가 들려서 뒤를 돌아봤다. 혹시 트럭 차주 분이시냐는 내 물음에 자기 트럭이 맞다고 하셨다. 본인 차와 내 차를 번갈아 보더니, 괜찮다고 그냥 가라고 하셨다. 정말 죄송하다는 내 말에, 차 많이 긁힌 것 같은데 속상하겠다고 하시며 가셨다. 그렇게 원래 가려던 곳은 가지 못하고, 놀란 마음을 부여잡고 집에 돌아오는 길은 아주 지옥이었다. 도로가 너무 무서웠다. 집에 와서 바로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 내가 사고를 냈어."

 아주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아빠에게 죄를 고백하듯이 이야기했다.


 "그래? 다쳤어?"

 돌아오는 아빠의 대답은 생각보다 침착했다.


 "아니, 다치지는 않았는데 차가 많이 긁혔어. 오래된 트럭을 긁었는데 내 차 보더니 괜찮다고 그냥 가라고 하시더라고. 그래서 그냥 왔는데, 너무 놀랐어."

 

"괜찮아. 인자한 분이시네. 많이 놀랐겠다. 그 차 뒤에 트렁크 한 번 열어봐."


 "트렁크는 왜?"


 "트렁크에 검은색 스프레이가 있어. 그거 한 번 차에 뿌려봐."


 아빠 말을 듣고 차 트렁크를 열어보니 정말 구석의 작은 상자에 검정 락커 같은 스프레이가 하나 있었다. 차에 뿌리니 꽤나 감쪽같았다. 물론 가까이서 보면 티가 났지만, 그래도 멀리서 보면 긁힌 상처가 잘 숨겨졌다.


 아빠에게 스프레이 그거 정말 좋은 거더라,라고 이야기하니 아빠가 사실은 자기도 몇 번 그 스프레이를 뿌렸다며 내게 이야기해주었다. 주차하다가 오른쪽 뒤 모서리를 벽에 긁어서 상처 난 것을 스프레이로 감췄던 이야기, 오르막길에 있는 주차장에 진입하다가 높이가 있는 턱을 진입로인 줄 알고 올라가다가 차 앞 아랫면이 긁혀서 스프레이로 감췄던 이야기와 같은 것 말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가까이서 자세히 차를 보니까 정말 여기저기 스프레이를 뿌린 듯한 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이 참 간사해서, 아빠의 그 실수들을 들으니 마음에 좀 위안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그 이후 한동안 차를 가지고 다니지 못했다. 두려웠다. 내가 미숙해서, 내가 초보라서 조심해서 다닌다고 다녀도 또 그런 사고가 날까 봐.




 이게 벌써 반년 전이다. 어제는 차를 가지고 포항에 드라이브를 다녀왔다. 고속도로를 타고 한 시간 좀 넘게 달려서 바다도 보고 조개구이도 먹었다. 가는 길에 초보운전 스티커를 붙인 노란색 모닝이 보였다. 내 앞에서 누가 봐도 초보구나 싶게 천천히 달리던 그 모닝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경적을 울리지 않고 나도 조금 느리게 뒤에서 가주는 일뿐이었다. 내게도 초보였던 시절이, 그래서 도로가 너무나 무서웠던 시절이 있었기에 그 모닝을 보채고 싶지 않았다. 조금 느리게 간다고 해서 내가 크게 손해 보는 건 아니니까.


 내가 지금도 운전을 엄청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두려웠던 시절을 극복하고 이제는 어느덧 '초보'라는 꼬리표는 떼어도 될 것 같은 그런 뭐, 흔한 운전자 중 한 명이 되었다. 지금은 차 없이 어떻게 살았었나 싶을 정도로 삶이 편리해졌다.


 사람이 산다는 게 이 초보 운전 같은 거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한다.  우리 모두가 이번 생은 처음이라서, 불가피하게 초보였던 적이 있지 않나. 사는 게 바빠서 살다 보면 그 시절을 가끔 잊어버리기도 하지만, 알고 보면 이 세상에서 우리 모두는 한 때, 삶의 초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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