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소담 Jul 23. 2020

알바몬의 세상

최저시급이 올라가도 내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성인이 되고 처음 집 근처 아파트 단지 내의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성인이 되면 해보고 싶은 일들 중 하나였다. 정당한 노동으로 떳떳하게 돈을 벌고, 그 돈을 오로지 나를 위해서 쓰는 것. 당시 시급이 육천원 정도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한 시간이 지날 때마다 내가 육천원을 벌었다는 사실이 나를 무척 뿌듯하게 했다.


 그 뒤로 시간적 여유가 생길 때마다 끊임없이 여러 아르바이트를 해왔다. 헬스장 인포데스크, 카페, 레스토랑 서빙, 빵집, 사무보조, 학교 연구실, 과외, 학원 아르바이트 등등.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는 젊은 사람이라면 다들 한 번씩 겪어봤겠지만, 종종, 아니 그것보다는 꽤 자주 진상 고객들을 마주쳐야만 했다.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다. 주말이라 가뜩이나 바쁜 날이었고, 같이 일하는 직원이 나오지 않아 혼자서 여러 명의 몫을 하느라 아주 정신없는 날이었다. 갑자기 문이 열리고 한 아주머니가 후다닥 들어와 쇼핑백 같은 걸 카페 의자에 던지더니 '잠깐 이것 좀 봐줘요!'라고 소리쳤다. 그러더니 내가 뭐라고 대꾸할 새도 없이 저 멀리 뛰어가버렸다. 가까이 가보니 명품 브랜드의 쇼핑백이었고, 안에 무엇이 든지는 모르겠지만 비싸 보였다. 카페에 cctv가 있었고, 카운터 안쪽에 놓아두기는 했지만, 누가 훔쳐가면 일이 복잡해지지는 않을까 신경이 쓰여서 일을 하면서도 자꾸만 시선이 그쪽을 향했다. 잠깐이라더니 몇 시간이 지나고서야 그 쇼핑백을 찾으러 온 아줌마는, 내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었고, 카페에서 음료를 사 간 것도 아니었다.


 헬스장 아르바이트를 할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인포데스크를 보면서 두 시간에 한 번씩 탈의실에 들어가서 밀대를 밀고 수건함을 비우는 게 내 일이었는데, 헬스장 고객 중 한 명이 자꾸 수건함에 본인이 와서 수건을 넣으면 될 걸 내 옆에 수건을 던지고 수건함에 넣어달라고 하더라. 처음엔 그냥 잘못 던졌나 싶기도 하고 해서 별 말없이 넣어줬는데, 그게 몇 번 반복되니 기분이 아주 더러웠다. 새 수건도 아니고 본인 땀 닦은 더러운 수건인데 그걸 사람 향해서 던진다는 게 참 그렇더라.


 집 근처 분식집 아르바이트에 지원서를 냈을 때는 이런 적도 있었다. 태풍으로 비가 아주 세차게 오는 날이었다. 전 날 밤에 그 분식집에 아르바이트 사이트를 통해 지원을 했는데, 아침에 전화가 와서 지금 면접 보러 와줄 수 있겠냐고 하더라. 밖은 하늘에 구멍이 난 것처럼 비가 쏟아지고 있었고, 바람도 엄청났다. 집에서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좀 당혹스러워서 "지금이요?"라고 되묻는 나에게 한 시간 내로 와달라길래 어지간히 급한가 보다 싶어서 우산을 써도 몸에 다 맞는 그 비를 뚫고 분식집에 갔다.


 그렇게 도착한 그 분식집에서 사장이 아주 웃긴 말을 했었다.


"날씨가 이런데도 와달라고 한 건 아르바이트를 할 의지가 그만큼 충분한가 싶어서 불렀다."


 다른 대다수의 아르바이트들처럼 그날도 5분도 되지 않아 면접이 끝났고, 그 비를 뚫고 다시 집에 돌아온 나는 홀딱 젖어있었다. 다음 날이 돼도 가게에서 연락이 없었고, 알바생 구했냐는 내 문자에 구했다고 미안하다는 답이 왔다. 아주 기분이 더러웠다.


 카페 같은 아르바이트를 하면 일 시작하기 십오분 전에는 와서 유니폼 갈아입고 해달라고 하면서, 문 닫을 때는 마감하다 보면 십분, 십오분씩 늦게 끝나는 건 다반사다. 사장은 같이 일하는 사이에 십분 정도의 편의도 못 봐주나 생각하겠지만 사실 계산해보면 하루에 삼십 분은 짧은 시간이 아니다. 이틀만 모여도 그게 한 시간이 되니까.


 최저시급은 매 해 올라서 2020년인 올해는 8590원을 맞이했다. 한 시간을 일하면 8600원을 버는 세상이라니 누군가는 돈 벌기 쉬운 세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를 해 본, 아르바이트를 구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정말 최저시급이 올라서 아르바이트로 돈 벌기가 쉬워졌는가?'


 아니.


 최저시급이 오른 만큼 고용주들은 돈을 아끼기 위해 피크 타임에만 아르바이트를 쓰려 예전보다 짧은 시간의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애초에 그런 아르바이트 자리마저도 예전에 비해 훨씬 줄어들었다. 간단한 서빙 아르바이트 같은 것들도 여러 명과 경쟁을 해야만 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제일 최근에 한 학원 아르바이트에서 나는 한 달에 더 많은 일 수를 출근했지만, 버는 돈은 옛날과 똑같거나 그에 미치지 못했다. 하루에 출근해서 일하는 시간이 짧아졌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생 입장에서 이틀 출근해서 총 6시간 일하는 것보다 하루 출근해서 6시간 일하는 게 더 이득인 것은 당연하다.


 이렇게 열심히 살았지만 한 번도 돈이 풍족했던 적은 없었다. 학업을 하다 보면 바쁠 때는 아르바이트를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모아두었다가 그럴 때 쪼개서 써야 했기 때문이다.  


 법이 아무리 바뀌고 최저시급이 아무리 올라 한 시간을 일하면 몇만 원을 벌 수 있는 말도 안 되는 세상이 온다고 해도, 알바생이 언제나 을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돈 쓰는 건 너무 쉬운데, 돈 버는 건 참 쉽지가 않다.


레스토랑에서 일할 땐 토마토 손질하는 게 제일 기분이 좋았어요.       모나지않고 동그란 것들이 아주 귀여워서요.


    

 

이전 07화 내가 사랑한 이웃들(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