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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담 Jul 16. 2020

어른을 위한 딸기맛 감기약

혼자라서 더 아픈 걸까?



 내게는 언젠지 기억이 나지도 않을 정도로 오래전부터 달고 살던 병이 하나 있다. 바쁘게 사는 현대인의 둘 중 하나는 앓고 있다는 과민성 대장 증후군. 그 녀석은 내가 조금만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거나 잠을 못 자서 피곤하거나 하면 불쑥불쑥 나를 찾아와 괴롭혔다.


 그날도 과민성 대장 증후군으로 배가 아픈 줄 알았다. 그런데 그 날은 좀 달랐다. 변기에 앉았다 일어나려 하는데 배가 정말 너무 아파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대로 배를 움켜쥐고 화장실에 주저앉았다.


 맹장인가 싶기도 했지만, 오른쪽 아랫배가 아픈 것이 아니었다. 무서웠다. 혼자 살면서 자잘하게 아팠던 적은 여러 번 있었어도 크게 아픈 곳 없이 몇 년을 잘 살아왔다. 갑자기 찾아온 복통과 함께 내 몸이 어딘가 크게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으로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택시를 타고 가장 가까운 응급실로 향했다. 다행히 응급실에 환자가 거의 없었고, 바로 진료를 볼 수 있었다. 의사의 안내에 따라 CT를 찍으며 내 불안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다. 결과를 기다리며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고, 엄마는 갑작스레 응급실이라는 내 말에 놀란 듯했지만 아파서 바로 응급실로 간 건 잘했다면서, 아픈 건 참는 게 아니라고, 별 일 아닐 거라고 나를 달래줬다. 이럴 때 보면 나도 정말 나이만 먹었지 아직도 엄마가 필요한 애다.


 난소낭종이었다. 후에 더 큰 대학병원에서 정밀검진을 받았고, 크기가 꽤 커서 수술을 받아야 했다. 의사는 원인은 알 수 없는 가임기 여성에게는 꽤 흔한 질병이라며 간단하게 이야기했다. 수술도 많이 위험하지 않으니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렇게 비몽사몽 한 채로 아침 첫 수술로 수술을 받고 나와 마취에서 깼을 때, 내 배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누워있던 몸을 일으키는 것과 같은 단순한 동작들도 엄청난 고통을 참아야지 간신히 해낼 수 있는 날이었다.


 엄마가 이틀 동안 보호자로 함께 있어주었다. 몸은 아팠지만 마음이 편안했다. 이제는 나보다 키도 작고, 무게도 덜 나가는 나의 작은 엄마가 내게 주는 안정감은 실로 거대했다. 이제는 아파도 택시 타고 응급실에 혼자 가서 진료를 받을 수 있을 만큼 머리가 컸지만, 마음은 여전히 어릴 때 엄마가 수저로 딸기맛 감기약을 입에 넣어줘야 와앙 하고 받아먹던 그 시절처럼 아프면 엄마를 찾게 된다.


 혼자 살면서 아픈 게 제일 서러울 때는 죽 끓여 줄 사람이 없을 때이다. 죽이 맛있어서 죽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내 기준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죽은 늘 맛이 없다. 그래도 어렸을 적부터 소화기가 약해 소화기 질병을 자주 앓던 나에게는 아프면 죽이 직빵이다. 아픈 사람이 죽 끓여 먹을 기운이 어디 있겠는가. 손가락 움직일 힘은 있어서 핸드폰 배달 어플로 죽을 시켜 먹는다. 그런데 1인 가구는 최소 배달금액을 맞추어 죽을 시키면 한 끼를 먹고도 죽이 한참 남는다. 그렇게 냉장고에 넣어 뒀다 다음번에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는 죽은 처음 그 맛보다도 맛이 없다.  


 혼자 살면서 누리는 편리함과 홀가분함이 외로움으로 변질되는 것은 한순간이다. 처음으로 가족들과 함께 지내는 집에서 나와 마련한 자취방은 내게 엄청난 자유를 주었다. 그저 모든 것이 내 마음대로였다. 밥을 몇 시에 먹든, 먹든 말든, 빨래를 하든 말든, 드러누워 방을 다 차지하든 말든, 그냥 모든 것이. 그래서 이대로 계속 평생 혼자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었다. 다만 돈을 벌어서 집의 크기만 조금 커진다면.


 그런데 한 번 그렇게 혼자서 크게 아파보니까, 역시 사람은 누군가가 필요한 존재이더라.


 아플 때면 엄마에게 전화해서 찡찡거리고 싶다. 엄마가 해 준 밥이 먹고 싶다고, 시켜 먹은 죽이 맛이 없어서 더 아픈 것 같다고, 기운이 없어서 방에만 누워있다고.


 그럴 땐 대부분 그냥 참는다. 아프다고 이야기해도 엄마가 당장 달려와서 죽을 끓여줄 만한 거리도 아니고, 엄마도 엄마의 일로 바쁜 걸 아니까. 그리고 나는 이제 그 상황을 이해하고 서운해하지 않을 만큼 자란 성인이니까.


 그래도 가끔은 어리고 철없는 딸인 것처럼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요즘 무리한 것 아니냐며, 아니면 또 까먹고 창문 열어놓고 자서 감기 들어 그런 건 아니냐며 수화기 너머로 건네는 엄마의 애정 어린 구박이, 나는 좋다.


 어쩌면 죽보다 엄마의 구박이 아픈 데 효과가 더 좋은 것 같기도 하고..?


감기 걸리면 엄마가 자주 해주던 토마토유자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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