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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담 Jul 30. 2020

내가 사랑한 이웃들(2)


 나는 보통 밖에서 사 먹는 것보다 집에서 요리 해 먹는 것을 좋아한다. 그 편이 더 경제적이기도 하고, 몸에도 더 좋을 것 같아서이다. 그런데 혼자 살아본 사람이면 알겠지만, 밥을 해 먹고 그것을 치우는 일도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종종 너무 피곤해서 밥을 차려 먹을 기운도 없는 날이면, 집 근처에서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고 들어가고는 했다.


 우리 집 건너편에는 초밥집이 있었다. 학생인 나에게 초밥은 자주 먹기에 살짝 부담되는 가격이었지만, 그 집은 그럼에도 자주 들렀다. 우리는 그 집을 패스트푸드점이라고 불렀다.


 가게가 꽤 크고 테이블이 많았음에도 일하는 분은 언제나 아주머니와 아저씨 두 분이셨다. 아저씨가 초밥을 만드시고, 아주머니가 서빙을 하시는 가게였다. 자리에 앉자마자 거의 동시에 아주머니는 직접 만든 유자 드레싱이 뿌려진 샐러드를 서빙해주셨다. 견과류까지 올라간 건강한 샐러드였다. 정말 패스트푸드였다. 햄버거집보다도, 한국인의 패스트푸드라는 국밥집보다도 훨씬 빨랐다.


 초밥과 함께 직접 끓이신 작은 우동과 시원한 차를 내어주셨다. 4년 동안 그 모든 것의 맛이 한결같았다. 변함없었다. 아주머니는 언젠가부터 나와 친구를 기억하기 시작하셨다. 초밥을 먹으러 간 지 2년쯤 되던 날이었다. 아주머니가 슬그머니 컵 두 개를 가져다주시며 맛있게 먹으라고 하셔서 받은 컵을 보니 레모네이드가 담겨있었다. 그 뒤로 2년을 갈 때마다 그 레모네이드를 큰 컵에 한 잔씩 건네주셨다. 손님이 많아 가게가 바쁜 날에도 늘 변함없었다.


 문을 열면 보이는 정갈한 가게의 풍경은 4년 동안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비가 오고, 눈이 와도 가게는 한 번도 정해진 휴무일 말고는 쉬지 않았으며, 오픈 시간을 맞춰 가도 늘 세팅이 되어 있었고, 매일 직접 끓이시는듯한 우동 육수와 차 또한 꾸준했다. 한 번의 호의로 끝나도 충분했을 그 레모네이드 주스도, 아주머니는 그 후 2년 동안 갈 때마다 늘 웃으며 건네주셨다.


 지치고 마음이 공허한 날엔 늘 그 초밥집을 찾았다. 마음이 공허한 날엔 괜스레 배까지도 더 고픈 듯 느껴진다. 익숙한 문을 열고 들어가 늘 앉던 자리에 앉아 늘 먹던 것을 먹는 그 순간은 일상의 작은 위안이었다. 평화였다. 내 삶이 요란하고 어지러운 날에도 그 가게에 가서 초밥을 먹으면 마음이 진정되었다.


 이삿짐을 싸고 그 동네에서의 마지막 식사도 그 초밥집에서 했다. 4년을 가게에 갔지만, 아주머니와 대화를 나누었던 적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나는 아주머니가 좋고 편했다. 계산하면서 이제 조금 멀리 이사해서 자주 못 올 것 같다고, 그동안 정말 맛있게 잘 먹었다고, 주스도 감사했다고, 늘 행복하시라고 말씀드렸다. 내가 받은 그 따뜻함을 말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서 속상했지만, 한마디 한마디 꾹꾹 마음을 눌러 담아 건넸다. 그런 나를 보며 아주머니는 나를 안아주시고, 잘 살라고, 밥 잘 챙겨 먹으라고 하셨다. 아쉬워서 눈물이 나왔다.


 나이가 들수록 변하지 않는 것들의 가치에 대해서 생각한다. 세상 모든 것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한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 것들 말이다. 우리 가족의 행복이나 건강, 세상을 마주하는 나 자신의 내면, 믿을 수 있는 몇몇의 친구들과의 관계 같은 것들. 세상이 아무리 변하고 내 주위를 많은 것들이 둘러싸도 결국 나를 지탱해주는 것들은 그런 것들이 아닐까 싶다. 그것들이 있어 나는 혼란 속에서도 작은 평화가 있고, 모든 것을 놓고 포기하고 싶을 때 되돌아갈 곳이 있다.


 초밥집이 영원히 그곳에 머물러주길 원하는 것은 나의 욕심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그 초밥집은 정말 영원히 마음에 간직될 것이다.


 이사하고 1년이 지났다. 초밥집과는 차 타고 45분 정도의 거리이다. 한 번 가볼까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혹시라도 없어졌을까 봐, 내 기억 속 풍경에서 무언가 변했을까 봐 걱정되어서 가보지 못했다. 지금 이렇게 좋은 기억으로 간직하는 것이 어쩌면 제일 낫지 않을까 싶어서.




 곧 대학교를 졸업한다. 졸업하는 날 초밥 먹으러 가볼까 한다. 아주머니와 아저씨의 초밥 때문에 건강히 졸업했다고 작은 감사 인사를 전하러 말이다.



최애는 소고기초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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