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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담 Aug 10. 2020

서울은 내 고향일까?

25년째 타지 살이ing


 엄마 나이 29살, 아빠 나이 31살에 둘은 결혼을 했다. 엄마는 충청도 사람이었고, 아빠는 경상도 사람이었다. 각자 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의 한 기업에서 일을 하다 마주친 사내 cc였다.


 아빠의 집은 무려 6남매였고, 그중 아빠는 막내였다. 엄마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4남매 중 셋째였다.


 우리 가족은 내가 태어나고 서울의 어느 한 시장 골목의 1.5층 원룸에서 삶을 꾸렸다. 1층도 아니고 2층도 아닌 애매한 높이의 작은 단칸방이었다. 동네의 한 유치원에서 나는 또래 아이들처럼 그 나잇대의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당시 그 유치원에는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놀다 갈 수 있는 놀이방 같은 것이 있었다. 나는 언제나 부모님이 마지막으로 데리러 오는 아이였다. 우리 부모님은 두 분 다 일하셔서 퇴근 후 나를 데리러 오셨기 때문이다. 그게 서운하지는 않았다. 난 또래의 아이들보다 일찍 철이 들었고, 부모님은 그런 나를 똑똑하고 예쁘다 하셨지만, 지금 생각하면 어린아이가 일찍 철이 든다는 게 꼭 좋은 일은 아닌 것 같다.


 그 뒤로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었을 때, 부모님이 그동안 열심히 모은 돈으로 이사를 했다. 오래된 단독주택의 2층이었다. 이제는 1.5층이 아닌 완벽한 2층이었고, 내 방도 생겼다. 이 곳에서 나는 초등학교 6년을 다니며 자랐다. 마당에 심어져 있던 감나무가 참 예쁜 집이었다. 열매가 열리면 우리 가족은 그걸 따서 홍시를 먹기도 했다. 집주인은 어느 해 이제 단독주택을 허물고 층수가 높은 빌라로 재건축해서 세를 놓을 거라고 했다. 그렇게 또 이사를 했다.


 그다음 집에서도 몇 년을 살았다. 집주인이 자기 딸이 결혼해서 들어와 살거니 이제 다른 집을 알아봐 주면 좋겠다고 얘기할 때까지. 그렇게 또 이사를 했다.


 그렇게 몇 번의 이사를 거쳐 지금의 집에 살고 있다. 집주인이 전세금을 올려달라고 한다. 내년에 이사하려 집을 알아보는 중인데 쉽지가 않다.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한 이사는 달갑지 않다.



 나는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태어났다. 잠깐 집안 형편이 어려웠을 때, 경상도의 친척집에서 잠시 신세를 진 적이 있기도 하지만, 그 기간을 제외하면 내내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그런데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나는 대답할 말이 없다.


 25년이다. 우리 가족은 서울에서 25년을 살았다. 엄마는 직업을 몇 번이나 바꿔가면서도 일을 놓지 않으셨고, 아빠는 회사를 몇 번이나 옮겨야 했다. 나 또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여전히 서울에 우리 집은 없다. 앞으로 몇 번의 이사를 더 해야, 마침내 우리 집이 생길지에 대해서도 잘 모르겠다.


 어렸을 땐 내가 우리 집의 외동딸인 게 너무 싫었다. 친구들은 매일 싸우기밖에 안 한다고 이야기해도, 형제자매가 있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부모님은 언제나 맞벌이 셔서 집에 늦게 들어오셨고, 나는 언제나 혼자인 채로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종종 부모님께 왜 나 하나만 낳았냐고, 한 명 더 낳아줬으면 서로 의지도 되고 좋지 않았겠냐고 투정 부리곤 했었다. 그럴 때면 나에게 부모님은 우리는 너 하나 잘 키우는 걸로도 힘들다고 이야기하곤 했었다.


 내가 성인이 되어서야 이 말을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서울에 연고가 없던 20대의 젊은 나의 엄마, 아빠가 여러 번의 시험을 거쳐 서울의 한 대기업에 취직하고, 잘 살아보겠다는 꿈을 가지고 가진 것 없이 서울로 올라와서 지금 50대가 되기까지 얼마나 아등바등 살아야 했을지. 그게 이제야 눈에 보인다.



 

 서울엔 해가 지날수록 점점 더 고층건물이 많아지는 것 같다. 빈자리도 없어 보이는데 또 그 터에 기어코 새로운 오피스텔, 아파트와 같은 것들이 들어오더라. 볼 때마다 낯설다. 이물감이 든다.


 참 이상한 도시다. 많은 사람들이 잘 살아보겠다, 열심히 살아보겠다는 꿈을 안고 서울로 상경한다. 누군가는 고시원에서, 작은 원룸에서, 각자의 목표를 향해 살아간다. 열심히 노력해서 살다 보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당신에게 서울은 어땠는가? 나는 아직도 이 도시가 참 낯설다. 고개를 치켜들면 빈 틈 없이 보이는 여러 고급 아파트와 오피스텔들이 때로는 구역질이 난다.



 어쩌면 우린 모두 평생을 타지 살이를 하며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애초에 고향 따위는 없는 걸지도.


    



 

한강입니다. 생각이 복잡할 때면 종종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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