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만 4살이 되어 데이케어(어린이집)를 다니게 되었다. 나의 삶이 돌아오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늘어나는 고지서와 치솟는 물가에 경제적인 압력도 점점 더 다가오고 있었다.
이전에 전공을 하고 경력을 쌓았던 치위생사 일을 다시 할까 생각했다. 특히 내가 살고 있는 캐나다에서는 벌이가 좋고 직업 만족도가 높은 직업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일을 하기 위해서는 다시 면허를 인정받기 위해 시험을 치르거나 4년제 대학교를 다시 가야 했다.
비용을 들여서 무언가를 다시 배워야 한다면 나는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일, 사회에 더 기여를 할 수 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치위생사 일도 남에게 이로움을 주는 일이다. 8년 가까이 일을 하면서 만족스러운 순간들도 많았다. 하지만 여러번 생각해 보아도 다시 진료실에 의료인으로 들어가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어릴 때부터 책 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했던 나를 기억해 냈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글을 쓸 수는 있으나 그로 인해 경제 활동을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자본주의 체제 속에 살아가면서 이를 무시하고 내가 하고 싶은것만 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인 이상주의자와 같았다.
블로그로 시작한 글쓰기가 유튜브까지 연결이 되면서 그래도 꽤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달이 날아오는 고지서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한달에 2천불만 더 벌 수 있다면..
결국 남에게 이롭고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시작했던 내가 좋아하는 일이 부족한 숫자 앞에 나를 짓누르는 짐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결정해야 했다.
당장에 나가서 시간제 일을 하며 몇 푼의 돈을 쥐어 계속 은행의 배를 불리는 일에 기여할 것인지, 아니면 내가 하고자 하는 이 일을 계속 붙잡고 있을 것인지..
그 때 꼭 나의 상황을 알고 말하는 듯한 책장에 꽂힌 책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그대로 갈 것인가, 되돌아갈 것인가."
나는 이 책을 아주 오래전에 사 두었다. 이전 화에 언급했던 스콧 니어링의 또 다른 저서 '조화로운 삶'을 읽고 깊은 인상을 받아 10여 년 전 쯤 같은 저자의 책을 사 두었던 것이다.
하지만 책장에 오랫동안 두고 읽혀지지 않았던 이 책이 이번에는 펼치니 때를 기다렸다는 듯 내 마음을 파고 들었다.
이 책은 이전 화에서 언급했던 스콧니어링의 '조화로운 삶'을 살게 된 배경과 계기를 좀 더 상세하게 서술했다.
그는 자본주의에 반대했다. 생산성을 높여 가난과 실업, 착취, 부도덕한 것들에서 이윤을 내는 사회를 비판했다. 젊은이들을 전쟁의 사지로 몰아넣는 것에 반대했다. 그는 그러한 사회의 현실을 고발하고 대안을 제안하는 강연을 하다 밥벌이를 잃어버리게 된다.
그에게는 삶의 신념을 지켜나가는 것이 이제는 먹고 사는 문제가 된 것이다.
그에게는 투쟁을 포기하고 힘센 이들의 무리 속에 들어가야 할 것인지, 불의에 반대하고 권력자들에게 용서를 구한 뒤 자신이 반대했던 사회 체제로 들어가 그들을 찬양하겠노라 약속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밥벌이를 찾은 다음 평화와 질서, 공공선, 사회 정의를 확립하는데 많은 힘을 쏟을 것인지 결정해야 하였다.
그가 어떤 선택을 했을지는 그리 짐작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는 혁명가도 전쟁의 영웅도 성인군자도 아니다. 단지 사회 과학을 배우는 사람으로서 그 관계 속의 진실을 파고 들어 잘못된 점을 개선하여 모든 인간이 자신이 속한 사회 속에서 '조화로운 삶'을 살기를 애써 바란 사람이다.
그는 직업을 잃었다고, 사회로부터 배척당하고 외면당했다고 자신이 생각한 옳은 일을, 그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더 구체적으로 대안을 세우고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그 신념대로 자신의 삶을 묵묵히 오롯이 살아내었다.
그는 겸손했고 평화를 유지했다. 그의 저항마저도 상대를 이기거나 정복하려는 목적이 아니었다. 그는 진심으로 모두가 조화로운 삶을 살기를 바랐기에 자신의 대안이 받아들여지기를 바랐다. 아니어도 스스로는 본인이 세운 원칙에 따라 살았다.
그는 자신의 삶을 통해 그렇게 하였다.
스스로 곡기를 끊고 죽음을 맞이하는 100살의 나이까지.
나는 사회 학자도 아니고 정치적 견해를 가진 사람도 아니다. 사회를 개선시킬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하고자 하는 굳건한 신념을 가진 것도 아니다. 자본주의의 삶을 영영 벗어나서 살 수도 없다.
다만 스콧 니어링이 말하는 '조화로운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한 사람이다. 각자의 환경과 역량이 모두 다르다. 그 안에서 내가 생각하는 조화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은 가능하다.
어쩌면 책상 머리 앞에 앉아 나의 삶을 돌아보고 나의 환경 안에서 실현 가능한 삶의 목표를 먼저 적어보는 것이 시작일지도 모른다.
남과 비교하지 않는 인생을 살아갈 것
다른 사람이 정해둔 '행복'이라는 그림에 나를 억지로 밀어넣지 않을 것
일상에서 '행복'한 일을 찾을 것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잊지 말것
남을 돕는 일을 하고 살아갈 것
건강을 잃지 않도록 할 것
눈에 보이지 않는(영적인) 일을 추구하며 살 것
이와 같은 메모가 시작이 될 지도 모른다. 그리고 좀 더 구체적인 방안들을 세워나갈 수 있겠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때마다 스콧 니어링 할아버지의 질문이 나를 다시 책상 앞으로 앉히게 될 것이다.
그대로 갈 것인가 되돌아 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