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을 회복하는 법

"비밀의 화원"

by 소단


"시방 제 속은 맑은 꽃과 향기들이 담겼다가 비워진 항아리와 같습니다." -서정주 기도 1中


이 책을 다 읽고 느낀 나의 감정을 꼭 잘 표현한 구절이다.

봄기운에 아지랑이가 일렁이듯 마음이 말랑말랑해졌다.


처음에 영어 원문 책을 읽으려고 집어 들었던 책이었다. 다른 책들과는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읽혔다. 아이들이 읽는 버전이라 쉬운 표현들이 있어서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내 눈을 떼지 못하게 한 것은 왠지 나와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듯한 캐릭터들이었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의 무관심 속에 자라다 결국 부모님 마저 잃게 된 핏기 없는 소녀 메리,

그런 메리를 데리러 영국에서 온 부유한 삼촌, 하지만 그도 아내를 잃어버리고 다시는 들어가지 못하는 정원에 빗장을 걸어두듯 마음을 닫고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삼촌의 아들 콜린, 아버지에게 외면받고 자신은 병상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다고 스스로 믿고 있는 소년이 있다.


각자의 지독한 외로움에 빠져 있는 이 캐릭터들이 나를 책 속으로 이끌었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면 그는 더 이상 생대방을 낯선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우연의 음악(폴오스터)


나는 책 속의 캐릭터들에게 동질감을 느꼈다.


캐나다에서의 이민 생활은 좋은 점도 많지만 결국 외롭다.

캐나다 뿐 아니라 어디든 이민생활이 그러할 것이다.


새로운 곳을 여행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깨닫고 배우는 것을 좋아했던 20대 30대의 나는 어느새 아마득해져 갔다. 건강을 잃어버리고 추위를 싫어하다 못해 공포감을 가진 내가 눈앞에 있다.


밖으로 나가는 생활에 제한되니 이곳은 평화로운 감옥이었다.


사랑 많고 자상한 남편도 있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도 있고, 주변에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외로움이 깊어져 가는 밤이면 그 어떤 것도 위로가 되지 않을 때가 있었다.


메리는 그 깊은 외로움에서 빠져나갈 열쇠를 찾아낸다. 비밀의 화원으로 향하는 열쇠이다. 아내의 죽음으로 그 기억을 떠올리기가 힘들어 아내가 좋아하던 정원에 다시는 들어가지 않겠노라 다짐한 삼촌이 버린 그 열쇠를 메리가 찾아낸다.


메리는 그곳을 비밀의 화원이라 이름 짓고 몰래 그 화원으로 매일 가서 정원을 돌보고 자연과 서로 어루만지며 핏기 없던 얼굴에 홍조가 띠기 시작한다. 그녀의 회복은 곧 다른 사람의 회복으로도 연결된다.


메리는 아버지에게 외면받고 침상에 누워서 죽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한 발짝도 나오지 못했던 콜린도 비밀의 화원으로 데려가게 된다. 자연의 위로와 온기를 받아 회복하게 된 그는 결국 휠체어에서 일어나 두 발로 서서 이렇게 말하는 날을 맞이한다.


"I shall live forever and ever and ever!"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 역시 그런 날들이 있었다. 더 이상 몸에 움직일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아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짐만 될 바에 차라리 내일 아침 눈을 뜨지 않았으면 하고 잠자리에 들 때가 있었다.


나는 비밀의 화원 대신 우리 집 뒤뜰 잔디를 밟았다. 햇살로 잘 데워진 잔디에 한발 한발 올릴 때면 따스한 땅은 언제나 나의 차가운 발을 온전히 받아주었다.


자그마한 텃밭을 만들어 씨앗을 심었다. 자그마한 씨앗 하나를 뿌리고 물을 주었을 뿐인데 몇 배로 불려서 내어주는 밭의 넉넉함에 부끄럽고 감사했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어보고자 글을 쓰는 일을 시작했다.


자연과 함께하면 외로울 틈이 없다. 자연은 듬성듬성 구멍이 난 마음에 한 땀의 햇살과, 한 땀의 싱그러운 녹음의 내음과, 넉넉한 소출들로 그 자리를 채워준다. 나눔과 정겨운 웃음이 그 자리를 메꾸어 나가다 보면 바람 한 올 들어올 구멍이 없이 잘 짜인 마음이 나를 감싼다.


나는 비밀의 화원으로 가는 열쇠를 계속 찾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그곳에는 자연과 함께하는 삶이 있는 것이다.


남편과 그런 이야기를 하곤 한다.


나중에 아이가 크면 시골에 들어가서 조그마한 텃밭을 하며 서재를 두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하루를 보내자고. 누구든 와서 함께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나누고 우리가 가진 것들을 나누어 줄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곳이 내가 꿈꾸는 비밀의 화원이다.

열쇠를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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