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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에서 아들과 문화차이

by 소단


캐나다에 와서 힘들었던 부분 중 하나는 아이들을 대하는 면이 한국과 너무 다른 것이었어요.


저희도 그렇게 의견을 물어보거나, 선택을 하도록 하는 환경에서 자라지 못했고 그러다 보니 아이들을 잘 대해 준다고 하는 것이(음식을 물어보지 않고 더 주는 것과 같은) 오히려 실례가 될 수 있는 상황이 많더라고요.


이런 문화 차이가 아이가 자라 가니 저희 집 식탁에서 일어납니다.


얼마 전 식탁에서 여느 때와 같이 아이에게 반찬을 덜어주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아이 표정이 굳어가더군요. 입이 뾰로통하게 나온 아이에게 일장 연설을 준비합니다.


"아니, 엄마가 이렇게 열심히 요리해서 너 더 먹고 건강해지라고 주는 건데 그게 그런 표정을 할 일이야?"


아이가 와플을 칼질을 잘 못해 어설프게 하고 있습니다.(만 7세)

옆에서 지켜보던 아빠가 쓱 다가가 칼질을 쓱싹쓱싹 한입거리로 아들이 먹기 좋게 와플을 예쁘게 잘라줍니다.


맞은편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제 눈에 아이의 굳어가는 표정이 들어옵니다.

또 입이 댓 발 나온 아이에게 아빠가 일장 연설을 준비합니다.


"아니, 네가 자르기 힘들어하니까 아빠가 너 잘 먹으라고 이렇게 잘라준 건데 그게 그렇게 불만이야?"


여기서 질문, 아이의 입은 왜 나온 걸까요?


엄마와 아빠는 사실 아이의 마음과는 상관없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가 속상한 건 밥을 먹기 싫어서도, 와플을 잘라 주어서도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존중받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속상함이었습니다.


캐나다에서는 혹은 영어권에서는 다른 사람의 접시에 물어보지 않고 음식을 덜거나,

요청하지 않았는데 먼저 나서서 돕는 것을 상당히 무례한 것으로 간주할 때가 많습니다.


한국에서는 돌봄이고 애정 표현이 이곳에서는 지나친 간섭,

자신이 존중받지 못하는 일이 되어 버리는 것이죠.


아이는 엄마 아빠가 행동하기 전에 이런 말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Do you wnat me to put some on your plate?"

"Want me to cut your waffle?"


이것 말고도 생각지도 못한 일이 또 있었어요.


어느 날 아이가 책 낭독 연습을 하는데 중간에 발음이나 강세가 틀린 것을 바로 잡아주니 아이 표정이 또 일그러지더라고요. 그럼 또 엄마 아빠가 무슨 말이 나갈지는 벌써 아시겠죠?


그런데 제가 놀랐던 것은 이번에는 그 강세를 바로 잡아준 것이 불만이 아니라 아이가 교정하는 말을 하기 전에 자기 이름을 먼저 불러달라는 것입니다. 이름을 먼저 부르고 교정을 해주는 것과 그냥 아이의 낭독에 끼어들어 교정을 해주는 것을 아주 다르게 받아들이더라고요.


제가 언급한 이런 사례들은 점점 느껴지는 차이 속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하답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서로가 이해가 되지 않고 쌓이게 되면 부모와 자녀의 갈등이 심화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그래서 평소에 아이와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가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아이가 클수록 영어를 사용하고, 지금도 아이는 영어로 말하고 저희는 한국어로 말하는 경우도 많이 생겼어요.(학교 들어가기 전 한국어만 하던 아이) 하지만 아이가 커갈수록 한국어를 잊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많이 느끼고 있어요.


앞서 언급했던 식탁에서 그런 문화 차이에 대해 엄마 아빠의 마음과 입장도 설명해서 아이가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아이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애정과 돌봄의 표현이라고요.

저희와의 소통도 중요하지만 한국에 가서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날 때 아이가 이 부면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안 봐도 눈에 선하시죠ㅎㅎ


제가 문화차이라고는 했지만, 결국 자녀를 나에게 종속된 존재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으로 존중하고 돌보아야 하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할 때 아이도 자라서 다른 사람을 더 존중할 수 있겠지요?


밥상에서부터 시작된 부모 공부에는 끝이 없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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