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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먼저입니다."

도로 위에서 건네는 말

by 소단

캐나다에 와서 가장 먼저 느낀 건 차도를 건널 때 사람이 먼저라는 사실이었다.


건널목 혹은 동네에서는 보행자가 발을 내딛기만 해도 차가 멈췄다.

특히 아이의 손을 잡고 있을 때면 버스도 당연한 듯 정차를 하고 기다려준다.


아이 덕분에? 길가에서 길을 건널까 망설이게 되는 순간이 있더라도 경적도, 눈치도 없었다. 그저 차들은 조용히 정차를 했다가 지나가곤 했다.


처음엔 어색했다. 차가 지나가는데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차가 기다리기를 지나가는 내 모습이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곳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사람의 안전과 권리’였다.


한국 사회에서 ‘빨리빨리’는 미덕이다. 전쟁이라는 역사적 배경이 남긴 것은 짧은 시간 안에 살아남아야 하고, 따라잡아야 했고, 앞서가야 했다. 빠름은 효율이었고, 성실함의 증거였고, 능력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신호에 빨라지는 발걸음,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 서두르는 발길, 답장이 늦으면 생기는 불안까지. 우리는 속도 속에서 서로를 재촉하며 살아왔다.


캐나다에 오니 신호등에 불이 깜빡이면 사람들이 뛰어가지 않고 다음 신호를 기다린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고 하면 뛰어가지 않고 걸어가서 다음 차를 기다린다.


그렇게 해보니 생각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잠깐의 멈춤이 이상하게 마음을 느슨하게 만들었다. 급히 건너지 않아도 되고, 뛰지 않아도 되는 순간들 속에서 생긴 여유가 나 스스로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관대함을 나타내도록 하였다.


나를 기다려 주는 차들에게서 존중받은 마음이 나 역시 타인을 존중하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마음에 조금 더 공간이 생기고, 삶은 조금 더 부드러워졌다.


“당신이 먼저입니다”라고 말하는 차들 앞에서 오늘 하루 나 자신을 혹은 타인을 재촉하지 않고

넉넉함과 믿음을 주게 된다.


어쩌면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도록 만드는 힘은 속도가 아니라,
멈춰도 안전하다는 확신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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