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쯤 전, 시애틀에 아는 동생을 만나러 간 적이 있었다.
빈이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재미교포 2세였다. 미국에서 나고 자랐어도 교포들끼리 어울려 지내는 모습은 흔했다. 생김새는 한국 사람과 다르지 않았지만, 그들에게 더 편한 언어는 한국어보다 영어였다.
그때의 나는 호주에서 1년, 캐나다에서 거의 1년을 지낸 뒤였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당시에는 영어에 꽤 자신이 있었다. 무식하면 겁이 없다는 말이 딱 어울리던 시기였다.
한국어로 이야기할 때는 한없이 순하던 교포 친구가 영어만 하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날,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한 문장을 들었다.
빈이의 친구들이 물었다.
“Do they speak English?”
순간 나도 모르게 귀가 쫑긋해졌다.
잠시 뒤 빈이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Just a little bit.”
‘잠깐만.. 지금 내가 뭘 들은 거지? 조금이라고?
내가 영어를 조금 한다고?’
그 자리에 함께 동행한 한국 친구가 있었는데, 영어권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터라 그 친구를 두고 한 말이라고 애써 생각해보려 했다. 하지만 느낌은 분명했다. 빈이는 우리를 따로 구분하지 않았다.
질문도, 대답도 모두 'They'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15년이 지난 뒤, 나는 비슷한 경험을 했다.
매일 밤 아들에게 잠들기 전 나는 아이에게 한국어 책을 읽어준다.
아이가 한글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아이가 영어로 말을 해도 되도록 한국어로 대답하려 애썼고, 영어에 대해 질문을 하면 아빠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와 함께 읽고 싶은 영어 책이 생겨서 같이 읽어보려 했을 때였다.
아이는 아무런 사심 없이 이렇게 말했다.
“엄마랑 한국어 책 읽을래. 엄마는 영어 못하잖아.”
순간, 15년 전 그날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이들의 말은 늘 필터가 없다. 그래서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아빠랑 엄마는 잘 안 안고 있잖아.”
그 말을 들으면, 아이 앞에서 더 자주 애정 표현을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고,
“엄마는 뭐든 만들 수 있는 사람이야. 나도 만들었잖아.”
라는 말은 나를 행복감에 빠져들게 한다.
“엄마는 영어 못하잖아.”라는 말은 이런 생각이 들게 했다.
'그래, 나는 현지인처럼 영어를 못한다. 그리고 한국어를 잘한다.
그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니까.'
빈이가 아무리 한국어를 잘해도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 언어의 한계를 느끼는 것처럼, 그것은 틀린 것도 부족한 것도 아니다.
한때는 모국어를 일부러 멀리하던 시기가 있었다. 영어를 늘려보겠다고 한국 사람을 피했고, 한국 드라마와 음악도 끊어냈다. 모국어를 들을 수 없는 곳에서 이방인으로 뿌리를 내리며, 나다움을 찾고 싶었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살았고, 그렇게 자유롭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아이에게 고집스럽게 한국어로 책을 읽어주는 엄마가 되었다.
영어를 못한다는 말을 들어도 더 이상 부끄럽지 않다. 그 말은 부끄러움을 느낄 말이 아니라 ‘나’를 더욱 분명하게 해주는 말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언어는 도구이자 수단일 뿐, 뿌리를 대신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영어가 모국어인 교포 2세들이 결국 같은 2세들과 더 깊이 통하는 것처럼, 나 역시 아이에게 내가 태어나 처음 들었던 언어를 건네고 싶다.
오늘도 잠들기 전, 나는 아이에게 한국어로 책을 읽어준다.
“그래, 엄마는 한국어 잘하니까 한국어는 엄마가 알려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