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 잘 지내다가도 계산대 앞에 서면 다시 '이방인이구나' 싶다.
“Hello, how are you today?”
앞서 있던 사람이 계산을 하며 점원과 화기애애한 이야기 꽃을 피운다.
제품 하나를 두고, 날씨를 두고, 막 지나간 강아지를 두고 사담이 끝없이 이어진다.
내 차례가 온다.
간단한 인사를 하곤 곧 침묵이 흐른다.
바코드 찍는 소리를 지나 마침내 영수증을 들고 헤어지는 순간이 반갑고도 씁쓸하다.
처음 영어를 배웠을 때가 떠올랐다.
호주에서 어학원을 다니던 시절, 교실 안에서 나는 자발적 꿀 먹은 벙어리를 자초했다.
선생님의 간단한 질문에 Yes인지 No인지 정하기도 어려운데, 남미, 유럽에서 온 친구들은 문장을 붙이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분명 같은 레벨로 배정을 받은 건데… 나는 왜 이렇게 할 말이 없는지 의문이 들었다.
학창시절에는 교실에서 어떤 개인적인 의견을 이야기한다는 자체가 어색했다.주어진 발표 시간을 제외하고는 수업시간에 의견을 말할 일이 잘 없었다.
혹여나 궁금한 게 있어 손을 들고 질문이라도 하면 상당히 특이한 아이가 되고, 튀려고 하는 아이가 되기 십상이었다. 혹은 수업시간을 지연시키는 민폐인이라거나.
어른들 앞에서 조용함은 미덕이었고, 상사 앞에서 좋은게 좋은거라는 말 앞에 침묵해야 했다.
그 침묵을 깨기로 결심하는데는 일을 그만 둘 각오도 함께 해야했다.
그렇게 나의 의견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의견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며 살아온 환경에서 자란 사람에게는
'질문'이라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
사실 "안녕하세요?"라는 말은 질문이지만 맺음말이다.
그 한마디로 예의 바른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런데 "How are you today?" " 오늘 어떠세요?"라는 질문은 부담스럽다.
처음에는 이 사람에게 나의 잘 지냄을 어디까지 알려줘야 하는 걸까라는 바보 같은 고민을 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웃으며 Hello라고만 한다면 이곳에서는 상대방에게 ’저는 당신과 대화를 꼭 이어나가고 싶지는 않아요.‘라는 인상을 주게 된다.
Hello, how are you?라고 묻고 간단하게라도 스몰토크를 하는 것이 이곳에서는 기본 대화 예의로 간주된다.
30년 동안 '우리의 행복은 어디에서 올까'라는 질문을 연구한 행복 심리학자 서은국 교수는 말한다.
"행복은 마음먹기 나름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 곳곳에 행복 압정을 깔아 두어야 합니다.
압정을 밟으면 비명이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습니까?그것처럼 자신이 행복한 압정을 깔아 두어야 합니다."
처음에는 왜 행복을 비명이 나오는 압정에 비유할까 생각했다. 하지만 비명이 나오는 '자연스러움'이 핵심이다. 사람마다 행복감을 느끼는 일상의 부분이 다르다. 그렇기에 자신에게 자연스러운 행복 압정을 일상에 깔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캐나다에서는 이런 스몰토크가 이곳사람들의 행복 압정이다. 은행에 가거나 마트에 가거나 길을 선택할 때도 이곳 사람들은 이런 소소한 스몰토크로 활력을 얻고 삶에 행복감을 느낀다.
하지만 이방인에게는 아니다. 오히려 계산대 앞이나 맞은편에 걸어오는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인사해야 할까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일상에 부담스러운 불안 압정이다.
팍팍한 한국 생활에서 행복 압정이 있었던가..우연히 길을 지나가다 흘러나오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 쇼윈도에 걸린 마음에 드는 니트, 추운 겨울에 붕어빵 한 봉지 따끈하게 쥐고 집에 돌아가 가족들과 나누어 먹을 생각과 같은 것들. 그것이 행복 압정이었던가.
계산대 앞에 이방인은 오늘도 캐나다에서 행복 압정을깔아 두기 위해 노력한다. 이곳 자연스럽게 스몰토크 하는 주제들을 생각해 보고, 그들과 한 시간도 넘게 이어질 수 있는 아침 스무디 주제에 대해 고민하고, 지나오는 사람에게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네고 강아지에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렇게 자연스러운 비명이 아니라 내적 고통으로 포장된 행복 비명을 질러보려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