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그렇게 열심히 적어?"
남편이 물었다.
나는 시선은 그대로 아이패드에 둔 채 말했다.
"아, 그냥. 한국 가면 먹고 싶은 거."
마치 웨딩 촬영을 앞둔 신부가 다이어트 식단을 짜듯 나는 비장했다.
(내용은 전혀 다르겠지만...)
회
시장 족발
쌍둥이 돼지국밥
세연정
북창동 순두부찌개
고봉민 김밥
기장 곰장어
전복죽
.
.
.
어느새 빼곡하게 채워져 나가는 목록을 보며 하나라도 놓친 것은 없는지 더블 체크하며,
내 머릿속은 또 다른 음식을 찾아 굴러갔다.
한국에 갈 계획도 없는데...
나는 간절했다.
지금 당장 이 음식들을 먹을 수 있다면
웬만한 일쯤은 다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나, 먹는 게 이렇게 중요한 사람이었나?'
그렇게 시간이 날 때마다 메뉴를 보고 싶은 나를 보며 문득 깨달았다.
그 음식들 속에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따로 있다는 것을.
어릴 때 나는 엄마 아빠의 칭찬을 들으려고
먹기 싫은 콩을 맛있는 척하며 꾸역꾸역 먹은 적이 있다.
"와, 콩을 그렇게 잘 먹어~?"
꿈틀거리는 산 낙지도 용기를 내어 입 안에 넣었다.
꼬물거리는 다리가 입으로 들어가는 그 순간 부모님의 얼굴에 미소가 완연했고,
고소한 참기름 향을 느끼며 꼭꼭 씹어먹는 나를 보며 아빠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하셨다.
"아이고, 야봐라. 산 낙지도 잘 먹는다~"
"너무 신기하다~."
그 음식들 속에 나는 인정받고, 사랑받았다.
엄마와 다툰 다음날은 사과 대신 식탁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김치찌개가 놓여 있었다.
뜨끈한 국물 속에 엄마의 마음을 느꼈다.
한국에서 밥상은 한 끼 식사 그 이상을 의미했다.
매운탕을 한 숟가락 뜨고 “크, 시원하다” 말하던 순간,
시장통에서 엄마 손을 꼭 잡고 걷다 족발 한 팩을 사 들고 집에오던 날,
지나칠 수 없어 들른 호떡집에서 뜨거운 호떡을 호호 불어 먹던 기억,
돼지국밥집의 시끌시끌한 소리 속에서 천천히 기울어가던 소주잔과 이야기들.
메뉴를 적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찰나의 행복과 그 뒤에 밀려오는 허기를 함께 맛보고 있었다.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받아들여지는 자리,
나의 모습 그대로가 용인되는 자리,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그저 조용히 한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자리,
나는 그 밥상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 밥상에는 이러한 것들도 있다.
OECD국가 중 자살률 1위
출산율 최하위 나라
수능이라는 제도로 아이들을 망치는 나라
남의 시선 의식하느라 내 인생을 살기 어려운 나라
사회적 기준과 부모의 기준에 맞추느라 숨이 막히는 나라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는 나라
노후가 보장되지 않는 나라
사랑하는만큼 힘든 가족
벗어날 수 없는 직장 문화.
이런 이유들 때문에 나는 ‘온전한 나’로 살 수 있는 곳을 찾아 떠나왔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밥상 앞에서 깨달았다.
이 모든 것들이 나의 뿌리라는 것을.
뿌리가 상했다고, 보기 흉하다고 끊어내 버리면 전체가 흔들릴 수 있음을.
몸의 치부마저도 나를 이루는 일부라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미처 품지 못했던 나의 뿌리들이
그래서 더 애틋한 나의 밥상이
나는 그리웠다.
그렇게 나의 이민은
밥상 앞에서 조용히 무너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