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o you pronounce your name?”
“How do you pronounce your name?”
"이름을 어떻게 발음하나요?"
내 이름에 영어식 발음을 입혀 전달해 본다.
여러 번 말해도 또렷이 전달되지 않는 이름 앞에서 나의 존재도 함께 작아진다.
어떻게 발음하든 상관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비슷하게 흘려들을 이름.
그렇게 이래도 저래도 상관없는, 애매한 내가 된다.
뭉그러진 발음 속에서 나 역시 흐릿해진다.
나는 자기 생각을 분명하게 말하는 사람들이 좋았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었다.
경계가 흐린 수채화가 아니라 굵은 붓으로 찍어 텍스처가 살아 있는 고흐의 그림처럼
선명하게 존재하며 살고 싶었다.
호주는 그런 나에게 꼭 맞는 곳이었다.
바다와 맞닿은 푸른 하늘, 싱그러운 잔디 위를 맨발로 걷는 사람들, 커피 향이 거리마다 깊게 스며들어 있는 곳. 나에게 호주는 모든 것이 분명한 곳이었다.
그곳에서 내가 가장 마음에 들어 했던 건 눈을 보고 말하는 사람들이었다.
길을 지나칠 때도 눈을 맞추며 인사했고, 주문을 받을 때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나이와 지위에 상관없이 사람 대 사람으로 대하는 태도.
선명한 그 사람다움 속에서 살고 싶었다.
호주에서 우연히 딸과 엄마의 대화를 보게 되었다.
여러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하던 공간이었다.
딸은 또래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엄마가 무언가 궁금해졌는지
딸에게 말을 걸었다.
그 순간의 장면은 십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선명하다.
긴 머리에 마른 다리를 가진 여자아이는
엄마의 눈을 똑바로 보며 또렷하게 말했다.
“엄마, 저 지금 이야기하고 있어요.”
사실 더 놀라웠던 건 엄마의 반응이었다.
엄마는 당연하다는 듯
“아, 미안해.”라고 말했고,
대화가 끝나면 알려달라고 했다.
그리고 다시 자신의 무리로 돌아가 대화를 이어갔다.
그 장면에서 아이의 말은 반항도, 무례함도, 변명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상태를 설명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 말은 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나는 그 장면에서 알 수 없는 쾌감 같은 것이 느꼈다.
다시 또래들 사이로 돌아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대화를 마무리하던
그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이곳에서는 나로 살아도 괜찮겠구나.'
1년 동안 호주에서 꿈같던 시간을 마치고
마지못해 오른 비행기 안에서 나는 이미 다음 행선지를 계획하고 있었다.
그렇게 오게 된 캐나다.
선명하게 살고 싶다던 내가
이제는 이름을 설명할 때조차 흐릿해진다.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조금씩 접어 넣는다.
이민은 언어를 바꾸는 일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희미하게 만드는 일이었을까.
어디서부터 흐릿해졌는지 나는 알고 싶었다.
무너지기 전에 그 답을 찾아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