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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단 Apr 05. 2024

마음에도 깁스가 필요한가요?

우울증약 먹어도 괜찮을까?

나는 멀쩡해 보였다.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들을 잘 해나가고 있었고, 주변에 힘든 사람이 있으면 도움을 주려고 하기까지 하는 멀쩡한 사람이었다.(그런 힘으로 또 살아가려고 했던 것 같다.)


나처럼 멀쩡해 보이는 친구가 있었다. 똑똑하고 친절하고 사려깊은 친구였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밤에 잠을 잘 못잔다는 이야기를 한다. 누가 밤에 자꾸 목을 조르는 것 같다고 하였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도망가고 싶어진다고 하였다. 위장장애가 있어 위가 안좋다고 하였다. 무력감이 들어 힘들다고 하였다. 


처음에는 걱정을 하며 친구가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귀기울여 들었다. 그런데 계속 듣다보니 친구가 겪는 증상들이 나에게 나타나는 증상과 좀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친구가 한국을 다녀왔다. 얼굴이 많이 좋아보였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정신 건강 의학과를 갔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처음에는 전혀 생각도 하지 않았고 아버지도 반대했지 어머니가 극구 그 의사에게 자신을 데려갔다고 하였다.(비슷한 증상의 사례를 가진 사람들이 좋아지는 경우를 많이 보셨다고 했다.) 친구는 공황장애, 불안 장애 진단을 받았고 약을 먹고 많이 좋아졌다고 하였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나도 꼭 정신과를 가보아갸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몸에 나타나는 자가면역, 우울감, 화남, 무력감 등이 어쩌면 나의 뇌가 고장이 난 것일지도 모른다는 확신이 들었다.


시기가 잘 맞물려 나 역시 한국을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친구가 추천해 준 병원에 예약을 해서 가게 되었다. 서울의 규모가 큰 대학병원이었다.


진료실을 들어서니 무표정한 의사가 나를 맞아주었다. 몇가지 간단한 질문을 하였고, 검사를 해보자고 하였다. 선이 여러개가 달린 모자를 쓰고 1시간 정도 문제같은것을 풀었다. 나의 뇌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 어떻게 대처하고 처리하는지를 알아본다고 하였다.


길고 긴 질문지를 받았다. 500문항에 가까운 질문들이었다. 아이가 잘 때 열심히 문항에 답을 했다. 검사 결과를 제출하고 진단을 받으러갔다.


여전히 무표정의 의사가 나를 맞아주었다. 그런데 진단 결과를 들으러 왔는데 말이 없다. 별 말이 없길레 별로 상태가 안좋은건 아니가보다 생각하며 내가 질문을 했다. 


"그래서 별로 심각한 건 아닌가봐요?"


"아니요, 심각합니다. 약 드셔야 해요."


"......."


"......."


"약 안먹고 다른 방법으로 해보면 안되나요?"


"그게 안되서 오신거 아닌가요?"


"......."


맞는 말이다. 


무미 건조한 그의 진료에 없던 병도 다시 생길 것 같다. 환자에게 맞는 약 처방을 잘해준다고 한다. 병원쪽 관계자와 접하는 일을 많이 하는 오빠가 말하길 그게 제일 중요하다고 한다. 맞는 약을 처방하는것. 정신과 약에도 종류가 아주 많아서 자신에게 맞는 약을 찾는 경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처방전을 가지고 낯선 거리의 길을 건너 눈앞에 보이는 약국에 가서 약을 샀다. 낯선 노란 박스를 가방에 넣고 멍하니 지하철에 앉았다. 내가 정신과 약을 먹는 상황이 되었다는게 뭔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검색을 해본다. '우울증 약 복용'


한국인의 10명 중 4명이 우울증, 우울감을 느낀다. 실제로는 더 많지 않을까.. 다들 그냥 그렇게 사는 거 아닐까.. 약을 먹으면 정말 좋아질까.. 약을 한번 먹으면 약 끈기가 어렵다는데.. 먹기 시작하는게 맞는 것일까?


그러다 눈에 띈 한 의사의 칼럼 글 문구가 보인다. 


"우울증 약은 마음에 깁스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마음에 하는 깁스.. 그래, 뼈가 부러지거나 금이 가면 깁스가 필요하지. 일시적으로 반드시 필요하지 것이지.. 일시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과정...


약을 먹기 시작한 2주 정도는 적응기간이 있었던 것 같다. 기분이 좋아졌다가도 확 안좋아지고 약간 왔다갔다 하는 느낌. 그런데 한 2주 정도가 지나자 전반적으로 마음에 안정이 드는 기분이 들었다. 신기했다. 이전의 나를 되찾은 느낌이라고 할까. 


쓸데없이 화가 나지도, 아이에게 괜한 짜증을 내는 일도 줄어가고 내가 생각하고 원하고자 하는데로 감정을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캐나다로 돌아가야 했을때 이제는 약을 못 먹을까봐 걱정이 되었다. 내 약은 처방전이 있어야만 구할 수 있었고 캐나다에는 같은 약이 없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상담을 받고 마지막 약을 처방 받아서 캐나다로 돌아오게 되었다.


나의 패밀리 닥터와 팔로업 진료를 보는데 다시 찾아봐도 내가 먹는 약은 캐나다에는 없다고 하였다. 약을 바꿔 볼 수 있다고 하였다. 나에게 맞는 약을 찾을 수 있을지 겁이 났다. 이제 안정을 찾았는데 다시 그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는 것도 두려웠다.


약의 용량을 줄여서 먹기 시작했다. 컨디션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약을 정량을 먹었을 때 더 컨디션이 안좋았다. (하지만 이것은 예외적인 상황으로 약의 복용량이나 중단할 때에는 반드시 의사와 상담 후 결정해야한다.) 유튜브에 나와있는 명 강의들을 들으며 나에게 맞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아침 저녁에 감사한 일 5분 아니 1분이라도 떠올리면 우울증 약과 같은 성분인 세로토닌이 몸 안에서 나온다고 하였다. 그렇게 해 보았다. 신기하게도 하루 하루 더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던 와중 혹시 임신을 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임산부에게는 복용을 권하지 않는 약이었다. 나는 망설였지만 약을 먹어보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먹지 않고 있다.


나에게 우울증 약은 정말 마음의 깁스와 같았다. 우울증 약의 기전이 스트레스나 부정적인 감정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도록 회로가 만들어진 경우를 다시 그 회로가 작동되어 부정적인 감정을 잘 처리하도록 도와주는 듯 하다. (내가 약을 먹기 위해 조사해보고 이해한 것으로는 그렇다)


나는 약을 먹는 동안 음식도 건강하게 먹으려고 했고, 운동도 꾸준히 하려고 노력했다. 지금의 나는 마음의 깁스를 풀고 재활도 거의 성공한 상태인 듯 하다. 


감기가 걸리거나, 몸에 뼈가 부러지거나 금이 갈 때는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엑스레이도 찍어보면서 왜 마음이 아플때는 병원을 가는 것을 꺼려하는 것일까. 몸을 돌보듯 마음을 돌보는데에도 더 넓은 시야를 가져보았으면 좋겠다. 특히 몸이 이상 신호를 보낸다면 그것의 거의 최종 신호이다. 내 마음을 돌아보라는.. 


그리고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을 믿어주는 것이다. 우리 몸에 상처가 나거나 뼈가 다쳤을 때 적절한 치료를 통해 도와주면 우리의 몸은 놀랍도록 스스로 회복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마음의 상처와 아픔도 약은 어긋난 마음을 일시적으로 바로 잡아주는 부목에 불과한 것이다. 스스로 안에 치유할 수 있는 힘이 반드시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치유를 도울 수 있는 것도 나 자신이다. 


 내 안에 긍정적인 나를 믿어주고 찾아주고 끌어내준다면 반드시 '회복된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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