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단 Apr 12. 2024

'나는 참 괜찮은 사람'..일까?

존스홉킨스 소아정신과 지나영 교수는 말하기를 한국 사회에서는 "난 참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정말 적다고 한다. 사람들은 단점은 한 페이지씩 적어내는데 장점은 잘 생각이 안나다고 말하곤 한다. 


나는 스스로 못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나름 자신감이 있는 편이었고, 원하는 일을 잘 성취해 나간다고 생각했다.


그래, 이 말에 맹점이 있다. '원하는 일을 잘 성취해나갈때,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 '괜찮은 사람이야'에 전제가 붙는 것이다. '넌 무언가를 해낼 때 괜찮은 사람이야!'


사실, 나는 아직도 이 카테고리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항상 나의 기준치를 높이 잡고, 그것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에는 나 자신이 별 소용없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가지는 듯 하다.


집에서 아내로서의 역할에서도, 엄마로서의 역할에서도, 혹은 일을 하거나 대인관계에 있어서도 싫은 소리를 잘 못듣고, 그것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면이 있었다. 모든 사람과 잘 지내야만 마음이 편하다고 해야하나..


이러한 나에 대한 과도한 기대치는 나를 억누르는 하나의 무기가 되어 돌아온다. 그리고 그 중압감의 깊은 곳에는 '나 괜찮은 사람이야?' 라는 의문이 있었다.


이러한 의심은 존재 자체로서의 귀함을 인정받지 못한 어린 시절에서 올 수도 있고, 경쟁 속 쟁취해야만 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오게 된 의문일 수도 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남편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남편도 부족한 면이 있다. 결혼하고 살다보면 어찌 좋은점만 보일 수 있을까. 남편의 그런 부면을 볼 때 나도 모르게 애정섞인 잔소리들을 하게 된다. 어떤 때는 나도 모르게 나오는 거친 말에 남편이 스트레스를 받고 큰소리를 낼 법도 한데, 남편은 그러지 않는다. 그러다 내가 무언가를 잘못해서 일이 잘못되었을때가 생기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그럴 때 이 남자는 결코 나를 탓하지 않는다. 자신이 처리할 수 있으면 하고, 아니면 그냥 넘어가는 진귀한 경험을 몇 번 하다보니... 궁금해졌다.


이남자는 어떻게 이렇지?


어떤 사건에 대해 이렇게 극명하게 다른 태도를 보이는 점을 두고 남편과 진지한 대화를 해보았다. 

대화 끝에 발견한 남편과 나의 다른 점이 있었다.


남편은 스스로에 대해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쓸데없는 자존심이 아니라 자존감이었다. 그렇기에 주변에서 누가 뭐라고 하든, 부정적인 말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매우 감성적인 사람이지만 감정기복이 크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잘못한 것은 인정을 하고 할 수 있는 것은 바로잡아보려 노력했다. 


깨달음을 얻고 나도 노력해보기로했다. 남편은 발견했지만 내가 발견하지 못한 괜찮은 모습을 보려고... 내 스스로를 자책하는 대신 나라는 사람을 이해해 보려고 했다. 어린시절의 일들, 자라나는 환경에서 겪게 되었던 일들, 그리고 성인 되어서까지의 나 자신을 돌아보면서 내가 이런 행동과 말을 하게 된 경위와 배경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다.


나도 거울의 내 모습을 보며 말해주었다..

'그래, 너도 열심히 살았고 꽤 괜찮은 사람이야.' 

'너 부족한 점이 많지. 그건 인정해. 그런데 좋은 점도 많이 있쟎아.'

'오늘은 그건 좀 못했지만 또 다른건 잘한것도 있쟎아.'

이렇게 조금씩 나를 응원하는 말을 해주기로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부모님이 아무리 나를 사랑해도, 나의 건강을 챙겨주려 하셔도..

아무리 나를 위하는 남편이 있다고 해도.. 나를 위하는 친구가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진정으로 나 자신을 위해 노력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나 뿐이라는 것을. 

나의 삶을 속속들이 알고 이해해주고 진정으로 위로해 줄 수 있는 것도 나 자신이었다.


우울증 약을 끊으려고 시작하게 된 감사메모.. 딱 3주 매일 감사한 일 3가지를 적었다.(일기를 적을 여력도 없어서 간단한 메모만 적었다) 아침, 저녁으로 잠깐 감사한 일을 생각하면 실제로 우울증 약에 들어가는 성분인 세로토닌 호르몬이 활성화된다. 잠깐 그 감사한 일을 생각할 때 나의 몸에서 그 놀라운 기전이 일어나는 것이다.


사소한 일에 대한 주변의 감사함은 나에 대한 감사함으로 이어져 나 자신을, 자신의 삶을 더 소중하게 여기도록 만들어 주었다. 실로 그변화는 기대 이상이었다. 나는 3주 이후에 우울증 약을 완전히 안먹게 되었다. 


지금도 몸이 완전히 건강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울감이 있을 때가 있다. 특히 추운 캐나다 겨울이 길어질 때면 더욱 그러하다. (건강 문제와 임신, 육아, 환경요인 등이 겹치면서 우울감이 증폭되었던 경우이다.)


하지만 이전하고 다른 점이 있다면 나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있다는 것이다. 나에 대한 이해와 믿음이 있기 때문에 언젠가 털어나고 일어날 것을 알고 있다. 너무 힘들면 왜 이것밖에 못하느냐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힘드니 좀 쉬었다 하라고 기다려 주려고 한다. 





감사 메모 외에 도움이 되었던 것들

운동

걷기(맨발로 잔디 밟기)

주변 정돈하기

정성스럽게 몸 씻고 로션 발라주기

친절하게 말하기

건강한 식단 유지하기

베이킹하기

요리하기

블로그에 글쓰기

책읽기

길게 호흡하기



이전 08화 마음에도 깁스가 필요한가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