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단 Jun 07. 2024

마흔이 되어 맞추는 엄마의 퍼즐

"나는 장모님이 부인을 많이 사랑한다는게 느껴지는데?"

라는 남편의 말에 '나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인가' 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결혼하고 아이를 낳기까지 엄마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에 대한 질문 자체를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 같아요. 

아니 외면하고 싶었던 질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에 대한 답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올까봐 두려웠는지... 혹은 그 반대의 경우라면 그 마음을 어떻게 받을지 몰라 두려웠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엄마에게 받았던 상처들이 컸었고, 단지 엄마가 행복하기만을 바랬던 작은 소망을 가졌던 소녀가 엄마의 감정과 상황을 모두 이해하고, 그 모든 행동들과 말들이 나에 대해 감정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고..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그런것이 아니라고 연관짓기에는 너무 어렸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결혼을 하고 나서 한없이 받아주는 남편에게 날 선 말들을 하고, 위한다고 하는 말이 상처가 되는 말이 되어 남편에게 하게 되었을 때, 이 말투와 대화 방식은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은데.. 그것이 엄마의 모습을 똑같이 반영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엄마를 또 한번 원망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모습과 행동을 하는 이유의 원인을 엄마에게서 찾고 나서야 뿌옇던 안개 속에서 앞이 또렷이 보이는 느낌이었고, 모든 퍼즐이 하나로 맞추어 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외투를 입지 않고 춥다고 하는 나를 보며 

"아이 참, 옷을 좀 입어라!!" 라고 신경질적으로 말하는 엄마의 말에

이전같으면 묵묵히 옷을 입었겠지만,

그날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인상 좀 쓰지 말고 이야기하면 안돼? 왜 꼭 그렇게 말해야 해?"

'지금까지 왜 그렇게밖에 표현하는 법을 나한테 가르쳐주어서 내가 어릴때도 힘들고 지금까지도 가정생활에서 그런 모습을 보여 힘들게 살게 하는거야.' 라는 의미가 담겨있는 말이었죠.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저의 모습에는 엄마와 똑같은 말투와 표정을 하고 있었겠죠.


거울효과라고 하나요, 내가 싫어하는 내 모습을 상대방에게서 보면 그것을 견디지 못한다고 하더군요. 저는 더 이상 엄마의 그런 모습을 보고싶지 않았습니다. 저 역시 그 모습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공격적이고, 날이 선 말투가 친근함의 표시이고,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했어요. 가족끼리는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오히려 말을 부드럽게 하면 착한 척 하는 것 같은 가식적인 언행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남편을 만나고 보니 그게 아니더군요. 가족들끼리 정말 서로를 위하고 부드럽게 말하는 사람이 있더군요. 부드러운 말투와 배려에는 그 어떤 강한 말보다도 힘이 있고 결국 상대방을 돌아보고 변화시키기까지 하는 힘이 있더군요.


그렇게 저 자신에 대한 떨어져있던 조각들을 맞추어가며 더 나은 엄마로, 아내로 살아가기 위해.. 엄마의 모습을 대물림 하지 않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오은영 박사님의 말씀처럼)을 하며 살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엄마의 미움에 가려 있었던 저에 대한 미움도 덜어내지더군요. 그리고 나니 더 멀리 떨어져있던 남겨진 엄마의 조각들을 서서히 맞추어 보게 되더라고요.


그 맞춘 조각들에서 보이는 것은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최선을 다해 딸을 사랑한 엄마의 모습이었습니다. 엄마가 나를 위해 날을 세워 했던 말들도.. 하루 하루 보였던 화난 표정들도.. 내가 감정의 쓰리기통이 되어버렸다고 생각했던 날들도.. 이기적으로 보였던 엄마의 말과 행동들도..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그랬던 것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편으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했던 아내로서의 삶, 경제적인 어려움 역시 감당하며 살아가야 했던 두 아이의 엄마, 지금도 바리스타 수업을 듣고 자격증을 따며 즐거움을 느끼실 만큼 적극적이고 하고 싶은 것이 많았던 꿈 많은 여성이었던 엄마, 외할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누구보다 생활 전선에 먼저 뛰어들어야 했던 엄마의 어린 시절.. 따뜻한 말투나 어조를 배울 기회가 없었던 엄마의 어린 시절의 삶...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던 엄마..


어느날 엄마에게 말했어요.


"엄마, 그렇게 한평생 아빠에 대해 나쁜 말 하면서 사는거 안 힘들어? 그런 것들을 글로 써보면 어때? 엄마는 엄마가 생각한것보다 훨씬 더 좋은 사람이고 능력이 있는 사람이야. 아빠에 대한 미움에 엄마를 소비하지 말고 엄마가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자꾸 생각해봐요."


엄마와 아빠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딸은 아직도 그 어린 시절부터 기도하며 품어왔던 기대를 놓지 않고 있나봅니다. 이제는 두분이 함께 행복하지는 못하더라도 각자의 위치에서 편안하신 모습을 보고싶은 그 소망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을까요.


엄마의 퍼즐이 완성되었을 때의 그 그림의 제목은 '엄마의 행복'이었으면 합니다.  






이전 03화 캐나다에서 겪은 뺑소니 사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