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모님 방문 후기
뭐든 미리미리 하지 않으면 부모님의 실망이 준비되어 있던 우리집과는 달리 남편은 어떤 일이든 서두르는 법이 잘 없습니다. 결혼 초에 어머님이 캐나다에 방문하셨을 때 어머님께 하소연하듯, 농담하듯 한마디를 해 보았습니다.
"어머님, 미리 미리 가방 좀 내놓고 이러면 얼마나 좋아요. (아침 바쁜 비행시간 맞추어 갈 때 캐리어를 차에 미리 실어두기를 바랬던 저) 그쵸?"
저희집에서는 당연히 맞장구를 쳤을 그 상황에 어머님은 이런 의외의 답변으로 저를 놀라게 하셨습니다.
측은한 표정으로 좀 이해하자는 표정으로 저를 보시며,
"피곤해서 그런다이가~" 라고 하시더군요.
10년 가까이 다 되어가는 일이지만 아직도 어머님의 표정이 생생합니다.ㅎㅎ
저는 그 때 부부란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사람이 만난다는 것'이라는 말을 체감했던 것 같습니다.
남편의 이런 여유있는?생활방식으로 결혼 초에는 답답한 마음이 들 때가 많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또 이런 면도 발견하게 되었어요.
항상 밥상을 미리 준비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자란 저는 어떤 때는 남편이 올 때 쯤이면 스스로 압박감을 주며 스트레스를 받으며 저녁을 준비하곤 했어요.
퇴근길에 남편과 통화를 하면 항상 먼저 묻는 말은
"배고파?" 였지요.
그럼 남편은 항상 이렇게 말하더군요.
"아니, 괜찮은데"
남편은 항상 배가 별로 안고프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녁을 여유있게 준비하려고 하는 편이었는데 어느 날은 집에 와서 보니 배가 많이 고픈 모양새였어요.
왜 미리 이야기 안했냐고하니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러면 부인이 미리 준비한다고 힘들까봐 그랬지."
"......"
미리미리가 항상 정답이었던 저의 뇌의 회로에 오류를 발생하게 만드는 말이었어요. 그리고 미리미리 보다도 더 중요한 '마음'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된 날이었지요.
한 심리학 교수가 말하더군요. 결혼 생활을 한다는 것은 두 남녀가 함께 수갑으로 묶여 있는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서로가 부족한 점만 본다면 그것은 고문이 될 것이고,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보듬으며 산다면 더욱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는 지평을 열게 된다는 말이 인상깊었습니다.
저는 뭐든 미리 미리 하려는 성격 플러스(아버지가 일처리를 철두철미하게 하는 스트일이셨어요) 자신에게 기대를 지나치게 높게 두는 성향이 있어 일을 진취적으로 해나간다는 좋은 점이 있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것이 불안과 걱정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일이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을 때는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자책하고 실망하기도 합니다.
그런 저와는 다른 남편의 성향이 결혼 초에는 힘들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의 이러한 면이 제가 돌보지 못했던 저의 마음을 돌아보도록 해주고 편안함과 안정을 찾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반대로 남편은 저의 성향을 통해 더욱 발전하는 부분이 있다고 말해주더군요.
우리는 아직도 부족하고 서로의 단점들로 예상치 못한 상황을 겪기도 하고 (몇 차례 사건들은 기회가 되면 말씀드릴게요) 그 속에서 힘든 점도 있었고 어떤 점은 현재 진행중이기도 합니다.
여전히 미숙하긴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서로의 단점을 보다듬고 사랑하는 사람의 단점 이면의 행동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내게 없는 부면을 채워준 배우자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답니다.
상대방의 단점을 이해하려는 노력에는 그 사람의 자란 환경을 돌아보는 것이 포함되어 있는 듯 합니다. 거기에는 상대방의 부모님이 내포되어 있죠. 결혼은 두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결혼 생활이 10년이 지난 지금에야 더욱 이해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남편을 잘 키워주신 시부모님의 두번째 캐나다 방문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감사한 마음을 전하려 최선을 다해보려 노력하는 저에게 어머님이 말씀하십니다.
"편하게 하면 된다. 편하게~ 차만 한 잔 하면 되는데~"
그렇다고 저의 성향이 바뀌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저의 음식을 맛있게 드셔주시는 두 분을 보면서 힘들어도 신이나 연일 김치를 담고 여러가지 음식을 하다보니 어느 날 아침에 결국 코피를 쏟고야 말았습니다ㅎㅎ
시부모님께서 깜짝 놀라시며 이제 진짜 그만하라고 하시지만 저는 그래도 다 못해드리고 가시는 날이 온 것 같아 마음 한 켠의 아쉬움이 남습니다.
즐거웠던 추억들로 이 아쉬움을 달래며 다음 만남을 기야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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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새학기가 시작되고 일상생활로 돌아가는 날이 가까웠습니다. 아들이 이제 오후까지 학교에 가니 저 나름대로는 하고자 하는 일들을 해 나갈 시간이 생긴다는 기대감도 있습니다.
시부모님 방문으로 연재가 늦어졌는데 부족한 글 좋아해주시고 구독해주시는 구독자분들과, 제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 전하고 싶습니다.
좋은 하루, 한 주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