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질한 심정은...?
시원해서 선풍기도 필요없다던 에드먼턴의 여름이 변하고 있습니다. 연일 33도를 웃도는 기온에 뜨겁디 뜨거운 열기에 달구어진 집은 늦은 밤까지 잠못들게 합니다.
다행인 것은 습도가 없는 편이라 하루에도 몇번씩 샤워해야 하는 찜찜한 여름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곧 다가올 긴긴 겨울을 생각하면 감사한 마음으로 이 열기를 받아들여야 할 것 같아요.
1달간 시부보님이 곧 방문하십니다. 시부모님이 곧 오신다며 해맑게 웃고 있는 저를 보며 어떤 분들은 신기?하다고도 하시고 착한 며느리라고도 하시더라고요.
결혼 초부터 아니 결혼 전부터 이해심과 배려가 많으신 어머님께서는 제 마음을 그렇게 편안하게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편하게 해주시는 시어머니께서 결혼 초에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나는 딸같은 며느리라는 말 안좋아한다. 며느리가 왜 딸이고 며느리지."
그 말씀이 처음에는 조금 서운하게 들렸어요. 그런데 살아보니 그 뜻이 며느리를 위하는 더 깊은 뜻이 담긴 감사한 말씀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딸과 엄마의 사이는 편안함도 있지만 그 편안함을 가장한 서슴없는 면도 있쟎아요. 말도 한번 더 생각해서 하지 못하고 내가 어떤 말을 해도 받아줄거라 믿어 가장 가깝지만 또 그렇기에 가장 상처를 많이 받는 관계 역시 엄마와 딸인 경우도 많이 있는 것 같아요.
어머님께서 며느리는 며느리라는 말씀을 하신 것은 가족이 되었지만 서로 지킬것은 지키며 거리를 유지하고 서로 존중하자는 의미가 포함된 말씀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말씀에 깊은 뜻 중 하나는 며느리로서 어머님의 아들인 남편을 잘 보완하는 아내의 역할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해주시는 말씀인 듯 합니다.
딸같이 편한 마음으로 있었다가는 그런 중요한 역할을 깨닫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어머님께서는 이번에 오실 때에도 각자의 공간을 존중해주기를 바라셔서 비용을 부담하시고라도 숙소를 따로 잡아달라고 하십니다. 오히려 제가 함께 생활하시기를 권하고 원하고 어머님께서는 다른 곳에 머물고 싶어하셔서 중간 합의점으로 2주는 저희집에 2주는 다른 곳에 숙소를 잡아서 머물기로 하셨습니다.
시부모님께서 오셔서 제가 신경쓰이는 부분 하나는 먹거리입니다. 저희도 평소 비교적 건강식으로 먹는다고는 하지만 어머님께서는 거의 가공식품을 일절 안드시고 그것에 대해 엄격하신 편이거든요.
남편과 처음 결혼했을 때 라면은 일년에 한번 먹는 편이었고 과자는 거의 못먹어서 숨어서 먹었다고 하더군요. 그에 비해 저는 과자 사탕은 달고 살았고, 주말이면 라면을 즐겨 끓여먹었으며 맥도날드 치즈버거를 야무지게 먹던 저는 남편이 좀 과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후에 자가면역 질환에 걸리고 보니 제가 지금까지 먹었던 식습관에 대해 돌아보게 되고 건강한 남편을 보며 저희집 식단에 더 신경을 쓰게 되더라고요.
하지만 이것이 바로 앞서 말씀드렸던 어머님이 기대하시는 며느리, 아들의 아내로서 하는 역할에 포함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희 부모님께서도 우리 남편에게 바라시는 남편의 역할이 있는 것처럼 저 역시도 이러한 아내, 엄마의 역할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데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에서 받아들이는 것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 듯 합니다.
결혼 이전에 제가 원하던대로 인생을 설계해 나갔기에 결혼 후에 남편이 가장으로서 내리는 결정에 따르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삶에서 아내라는 역할이 더해져 때로는 가정의 일원으로서 무언가 원하지 않는 일도 해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익숙해지지 않고 답답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고나닌 저의 이런 사정은 더더욱 봐줄 겨를이 없더군요. 휘몰아치는 육아와 집안일에 정말 몸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많이 힘들었지만, 이제야 아이의 지난 영상을 보며 어머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머리를 끄덕입니다.
"그때가 금방 날아가버린데이, 그때가 제일 행복한 때란다."
힘든만큼 행복한 시간이었음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오늘처럼 덥고도 아이가 방학이라 심심하다고 칭얼거리는 날에도, 이런 날이 얼마 가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며 아이를 더 사랑하고 아내로서, 엄마로서의 역할을 잘 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저에게 주어진 며느리라는 역할도 잘해보고 싶습니다.
오시는게 기대되고 설렌다는 말씀을 전하니 어머님께서 '시'자 들어가는 시금치도 어떤 사람은 안먹는다는데 설레기까지 하냐고 웃으십니다.
부족하겠지만 사랑하는 남편을 잘 키워주신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전할 수 있는 여행이 되시면 좋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dN7sVdXjO0&t=136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