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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면 무릉도원

[양촌일기]

by 소똥구리

봄은 생각보다 일찍 시작된다.

아직 겨울인 듯 쌀쌀하고 응달에는 눈이 남아있지만,

봄볕에 생명들이 움트기 시작한다.

내곡리 봄의 주인공은 꽃이다.


봄이 오기 시작하면 초록빛 여린 매화가 먼저 핀다.

이어 연분홍 복사꽃과 하얀 배꽃이 반갑게 피어난다.

북쪽 산비탈에는 상아빛 목련이

아직 메마른 나뭇가지 사이에서 봄의 생기를 뽐내기 시작한다.


이 꽃들을 가까이하고 싶어 밭 가장자리를 따라 산책길을 만들었다.

배꽃 곁을 지나고 목련 숲 아래를 지난다.

그중 백미는 굵은 매화나무 가지 아래 매화꽃 터널이다.

꽃 향기 맡으며 고개를 살짝 숙이고 지나가야 한다.

그 풍경과 그 몸짓이 즐겁다.


나무에 꽃이 피는 동안 땅에서도 생명이 피어난다.

아직 황량하고 얼어있는 흙을 열고 초록빛 새싹이 움트기 시작한다.

봄나물은 땅에서 피는 꽃이다.

봄나물이 반가운 건 누이들이다.


우리 육 남매는 모두 밭에 가는 걸 좋아한다.

어렸을 적 시골에서 자라 그런가 보다.

그때를 생각하며 바구니를 옆에 끼고

냉이며 씀바귀며 곰취며 돌나물이며 봄나물을 캔다.


그중 냉이가 가장 먼저 나와 반긴다.

큰누나는 향기를 맡아보라고 방금 캔 냉이를 건네준다.

봄의 향기가 싱그럽다.


봄나물 캐며 이야기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옛날 추억 얘기에

삼십 년 사십 년 전 풍경이 고스란히 되살아 나 지루할 틈이 없다.


밥때가 되면 다 함께 둘러앉아 각자 준비해 온 찬과 국을 펼친다.

특별한 메뉴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집에서 먹는 평범한 음식이다.

그래도 밭에서 먹는 밥은 놀랍도록 맛있고

두 그릇을 먹어도 금방 소화가 된다.


봄날 식탁의 주인공은 된장국이다.

방금 캔 냉이, 씀바귀를 듬뿍 넣고 끓인 봄표 된장국은

‘이때’, ‘이곳’이 아니면 맛볼 수 없는 귀한 맛이다.


부모님은 우리 육 남매가 밭에 모이면 그렇게 기뻐하신다.

잘 자라는 부추, 호박, 도라지도 예쁘지만

복작복작 시끌시끌 떠들어대는 자식들이 더 기쁜가 보다.


내곡리 봄밭은 하늘 높이 웃음꽃이 피는 무릉도원이다.

(16.2.16, 24.2.7)






사진_복숭아꽃ⓒSoon(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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