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살 것 같다. 너무나 평범한 진리이지만 며칠간의 입원, 수술, 마취, 회복의 과정을 겪으며 일상의 소중함을 느꼈다. 어찌 겪어보지 않으면 이걸 모를까.
특별한 수술은 아니고 충수돌기(맹장) 제거수술이었다. 너무 흔한 수술이기에 걱정은 없었다. 며칠 출근 안 하고 입원해 푹 쉰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슬리퍼, 물컵 등과 함께,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읽을 책 일곱 권을 챙겨서 일산차병원에 입원하였다. 입원 수속을 마치고 십 층 입원실에 들어서니 창밖으로 호수공원이 보였다. 헐거운 환자복으로 갈아입으니 몸도 마음도 가벼워졌다. 첫날은 그렇게 침대에 누워 풍경도 살피고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 1, 2권을 재미있게 읽었다.
막상 수술을 하고 나니 모든 것이 바뀌었다. 일단 아팠다. 그것도 심하게 아팠다. 4시간 간격으로 진통제를 투여하였으나 계속해서 통증이 있었다. 이렇게 수술을 하고 진통제를 안 주면 정말 최악의 고문이겠구나 싶은 엉뚱한 생각도 들었고, 오십 년 전, 진통제도 변변찮았을 그때, 생명을 담보로 내과 수술을 받은 아버지는 그때 얼마나 고통스럽고 두려웠을까 싶기도 하였다.
한밤중에는 진통제의 부작용인지 구역질이 치솟았다. 구역질을 한다는 자체보다 배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겁이 났다. 재채기만 해도 배가 아픈데 구역질을 하면 봉합한 곳이 터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구역질하다가 죽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나오는 구역질을 참을 수는 없었다. 눈물 찔끔 콧물 찔끔하며 한바탕 헛구역질을 하였더니 속은 편안해지고 다행히 속이 터지지도 않았다.
그렇게 평온한 밤에 홀로 전쟁 같은 하룻밤을 보내고 날이 밝으니 조금은 안정이 되었다. 이제 문제는 방귀였다. 영화를 보면, 맹장수술 후 쉽게 방귀를 뽀옹하고 뀌면 ‘하하하’ 웃으며 간단히 마무리가 되지만 현실은 달랐다.
일단은 방귀가 나오지 않았다. 가스가 차서 배가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지만 방귀는 나올 기미도 없었다. 가스가 차면 그냥 배가 부풀어 오르는 겉모습이 문제가 아니었다. 가스가 차면 배가 아팠다. 명랑한 담당 간호사는 아파도 계속 운동을 하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며 "아버님, 파이팅!"이라고 하였다. 아픈 배를 끌어안고 병원 복도를 따라 계속 돌았다. 그럼에도 방귀는 감감무소식이었다.
“혹시 수술이 잘못된 건 아닐까? 혹시 의사가 실수로 대장을 막아 버린 게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그렇게 거의 24시간이 지난 듯하다. 힘이 들어 잠깐 침대에 누웠는데 방귀가 나올랑말랑 하였다. 아기를 낳듯 무릎을 굽히고 다리를 살짝 벌려 주었더니 ‘뽀오옹’하고 방귀가 나왔다. 나왔다! 드디어 장이 통했구나! 아, 수술이 잘됐구나! 안도가 되었고 과연 운동이 효과가 있구나 싶었다.
방귀 한 번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 건 아니었다. 가스는 계속 차올랐고 계속해서 운동하고 방귀 뀌는 사이클이 반복되었다. 병원을 서너 바퀴 돌고 침대에 누워 쉬기를 반복했다. 밤이 늦어 자려고 누웠는데도 방귀는 계속 뿜어져 나왔다. 체면이고 뭐고 너무나 반가웠다.
방귀 뽕뽕! 이게 이렇게 의미 있고 중요한 일인지 미처 몰랐다. 숨 쉬고 방귀 뀌고 물 마시고 땀 흘리는 당연한 일들이 이렇게 중요한 일인지 생각하지 못했다. (25.1.20)
사진_청보리밭ⓒSoon(23.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