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항상샬롬 May 10. 2020

나름 화려했던 나의 경력들

이런저런 이야기 1

    나는 고3 때 학교를 다니며 취업을 해서 회사를 다녔다. 사립 인문고를 들어가 1학년 때 과외를 하면서 공부를 해보았지만 내 성적으론 내가 원하는 학과는커녕 수도권에 있는 대학에는 절대 가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다 2학년에 올라가기 전 이과 문과를 결정해서 적어 내라고 하자 나는 엄마와 상의 없이 실업반을 선택했고 2학년에 올라가서 실업반을 다니게 되었다. 엄마에게 엄청 혼이 났지만 실업에 들어가야 실업한 반에서  62명끼리 다시 등급이 매겨져 내 등급이 지금보다 상위권이 되고 취업도 잘되고 취업 먼저 하고 재수해서 대학교에 갈 거라는 나의 계획을 말씀드렸더니 많이 속상해하셨지만 일단 믿겠다고 하셨다.(나중에는 내선택을 잘했다고 칭찬해주셨고 야무진 딸이라 인정해주셨다)


  실업반에 들어온 친구들은 보통 공부에 관심이 없고 그냥 취업이라도 잘하자 라는 생각으로 들어온 애들이 많았다. 나는 1학년 때 딱 중간성적이었는데 실업반에 들어와서 15등급 중 4등급으로 올라갔다.(지금은 9등급제인데 그 당시에는 15등급제 였음) 내가 열심히 공부한 게 아니라 다른 친구들이 덜한 거고 난 평소대로 공부한 결과였다.

  

  친구들과 두루 잘 지내고 재미있고 웃기는 활발한 성격이었던 나는 나름 인기가 있어 2학년 때는 부반장이 3학년 때는 반장이 되었다. 실업반은 딱 한 반이라 2년간을 같은 반 친구들, 같은 담임선생님과 지내게 되었는데 그 당시 인문고에 실업반은 취업하는데 인기가 좋았다. 상업과를 나온 친구들보다 우대를 더 해주는 그런 분위기였다.


  게다가 나는 반장과 부반장을 지내서 담임선생님의 취업 추천을 제일 먼저 받게 되었고 고3 2학기 때 강남에 있는 나름 잘 나가는 레미콘 회사 본사 영업부에 취업이 되었다. 영업부에서 1년을 일하면서 막내로 언니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나름 일 잘하고 성실한 직원으로 칭찬받으며 지내다가 회사를 다니면서 밤에는 회사 앞에 있는 야간 재수학원을 다녔다. 그리고 그다음 해 전문대를 입학하고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 회사에서 친해진 언니 세명과는 지금까지도 가끔 만나면서 잘 지낼 정도로 나에게는 정말 좋은 기억에 남는 회사였다.


  전문대 졸업을 앞두고 취업이 돼서 그 당시 대기업 보험회사에 취업이 되었는데 관리직이라 해서 들어갔으나 보험설계사 자격증까지 따게 되는 3개월째 보험설계 영업직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바로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만두자마자 그 유명한 IMF가 터졌다.


  취업이 되지 않자 안 되겠다 싶어 아르바이트를 구했는데 청담동에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였다. 3개월을 일했는데 청담동에 사는 유명한 연예인들도 많이 보고 여자 사장님도 참 좋으셨고 나름 재미있었다.


  그 후 바로 아는 후배의 소개로 모 은행의 파트타이머로 2년간 근무하였는데 평생 그렇게 많은 돈들을 구경해본 적은 처음이었다. 나중에는 돈처럼 느껴지지도 않고 그냥 종이로만 여겨질 정도였다. 그러다 은행이 통합이 되면서 새로운 대리님들이 오게 되었는데 하두 커피 심부름만 많이 시키고 정직원이 아닌 파트타이머라고 무시는 정도가 심해지는 게 보이자 그만두었다.


  그만두고 집에 가는 길에 이동통신 매장 유리에 여직원을 구한다는 전단지가 보여 한번 면접을 가볼까 해서 보았는데 다음날부터 나오란다. 그래서 또 이곳에서 2,3년을 근무하다가 본사에서 자주 오시는 대리님이 스카우트를 하고 싶으시다면서 이동통신 회사 본사에서 다시 1년 정도를 근무하게 되었다.


  근무를 하다가 내가 하는 일에 회의가 느껴져 그만두겠다고 하자 친한 팀장님의 소개로 여의도에 있는 개인 증권회사에 취업이 되었다. 사장님 한분과 이사님 네 분을 모시고 나까지 여직원 3명이 근무하는 곳이었는데

별로 할 일도 없었고 증권시장이 끝나는 시간이면 우리도 퇴근을 하는 그런 회사였다. 개인 증권회사라 그런지 나름 급여도 많이 나왔고 보너스와 선물도 많이 받았다.(이 좋은 회사를 계속 다닐걸. 왜 그만두었을까? 흠흠) 이곳을 다니면서 평소 관심 있었던 레크리에이션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했고 다니던 교회와 아는 분들이 부르는 곳에 가서 레크리에이션 진행을 하고 적은 금액이지만 수고비를 받는 나름 투잡 생활을 했었다.


  그러다가 아빠의 직장문제로 서울에서 경기도 일산으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출퇴근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게 되자 증권회사를 그만두고 무슨 일을 할까 하다가 집 근처 전철역 바로 앞에 생긴 도넛 가게에서

두 달간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아는 언니가 일산에 초등수학학원을 차렸다며 좀 도와달라고 해서 시작된 것이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강사가 되었다. 5년간 초등수학 강사일을 하면서 매주 토요일에는 서울에 있는 청소년수련관에서 레크리에이션 강사로 2년간 근무를 하였다. 그즈음에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고 서울로 신혼살림을 차려 서울에서 다시 초등수학강사로 4,5년을 일하다가 첫째를 갖기 위해 다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되었다.

  

  지금은 둘째 육아 중이지만 둘째를 임신하기 전 수학스토리텔링 지도사 자격증과 보드게임 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현재 사회복지사 실습을 하고 있다.


  이렇게 글을 써놓고 보니 나름 나도 참 열심히 살았구나. 쉬지 않고 일했구나. 그리고 많은 곳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였구나 라고 느껴진다. 마흔 중반의 나이를 살면서 드는 생각은 많은 경험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이다. 많은 경험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고 도움도 받고 도움을 주기도 하고, 실패도 하고 성공도 하고, 배우기도 하고 가르치기도 하고, 울어도 보고 웃어도 보고 하면서 풍부한 삶을 경험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러면서 사람이 단단해지고 어떤 경우든 당황보다는 여유가 생기고 스킬이 생기고 하게 되는 것 같다.


  특히나 사람과의 관계가 제일 힘들고 어렵고 중요한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에겐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사람과의 대처방법 또한 많이 알게 되는 것 같다.


  나는 사람운이 좋은 편인지 사기를 당한다거나 피해를 당한 적은 거의 없는데(이 말을 하면 남편은 내가 피해를 당한 거 조차 모르고 살았을 거라고 말한다. 흥) 내가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격 탓도 있겠지만 많은 일들을 해보면서 많은 사람들을 겪으면서 나름 생기는 노하우가 큰 힘이 된 것 같다.


  곧 대학생이 되는 하나밖에 없는 조카에게 뭐든지 다 해보라고 다시 또 얘기해줘야겠다.



증권회사 다닐 때 받은 과일바구니

(정말 많은 선물을 받았었는데 쩝 아쉽다 나 다시 돌아갈래 흐흐)

작가의 이전글 딸기농장 사모님에서 다시 전업주부로-나의 시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