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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항상샬롬 Sep 24. 2020

방학 때만 오는 손님

이런저런 이야기 40

  15년 전부터 방학 때만 오는 손님이 있다. 방학을 하면 방학 내내 우리 집에서 지내는 손님인데 바로 나의 조카이다. 친오빠의 딸 나에게는 형제가 오빠밖에 없고 오빠에게 자녀는 외동딸 하나라서 세상에서 딱 하나뿐인 조카이다.


  2002년 우리 집이 서울에서 경기도로 이사하면서 오빠네와 합쳐 살았는데 조카가 돌잔치를 하고 얼마 안 돼서 오빠가 새언니와 이혼을 했다.


  그래서 엄마와 내가 같이 조카를 키운 셈이다. 그러다 내가 2005년 결혼을 하고 다시 서울로 오게 되어 조카와 떨어져 지내게 되었는데 주말이나 연휴, 그리고

어린이집 학교가 방학을 하면 우리 집으로 데려와 같이 지내곤 했다.


  우리 부부가 6년 동안 난임이었을 때 조카가 우리 부부에겐 딸이었다. 완전 조카 사랑에 푹 빠진 고모와 고모부였다. 가끔은 '그래서 우리에게 아기가 늦게 왔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어린 조카를 먼저 돌봐주고 사랑해주라

는 뜻으로 말이다.


  아무튼 조카도 우리 부부를 무척 좋아했고 잘 따랐다. 방학만 되면 키즈카페도 데려가고 놀이공원도 가고 직업체험도 시켜주고

맛있 음식과 간식도 만들어주는 등 조카에게 온 정성과 사랑을 듬뿍 쏟았다.


  그러다가 결혼 6년 후 딸아이가 태어나자 조카는 동생이 생겼다며 너무 좋아했고 9살 차이 나는 딸아이를 이뻐해 주고 잘 봐주고 놀아주었다.


  항상 방학이 되면 우리 집에 와서 방학 내내 지냈는데 내리사랑이라고 나에게 받은 사랑을 우리 딸과 아들에게 되돌려주듯이 너무나 잘해주고 잘 지낸다. 우리 아이들도 우리 언니, 큰누나라며 잘 따른다. 그렇게 셋이서 커서도 서로 의지하고 도와주며 잘 지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카가 중학생 때였나 그날도 방학중이라 우리 집에 있었던 때였는데 조카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조카가 하는 말.


"고모, 나는 어릴 적에 고모가 엄마인 줄 알았어. 엄마인데 고모라고 부르나 보다 했지."라는 말을 듣는데 가슴이 미어졌다. 그랬구나. 그렇게 생각했었구나.


  아마도 조카는 한 살 때 엄마와 헤어진 거라 엄마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을 테지만 엄마 사진을 보고 어렴풋이 엄마를 생각하고 느끼게 되었을 것 같다. 새언니의 잘못으로 이혼을 한 것이라 조카와 새언니가 교류가 전혀 없다가 조카가 중학생이 되면서 서로 연락도 하고 지금은 가끔씩 만나기도 한다. 그래도 떨어져 있던 시간의 차이가 커서 그런지 엄마보다는 나를 더 의지하고 잘 따르고 나에게 더 속 깊은 얘기들을 해준다.


  그랬던 조카가 지금 고3인 19살이다. 어제 대학 수시 접수하고 있다며 전화가 왔다. 조카가 원하는 과에 원하는 대학으로 가게 되면 정말 좋겠다. 그리고 이번 겨울이 아마도 우리 집에서 보내는 마지막 방학이 될 것 같다. 대학교 가서는 방학 때도 아르바이트와 공부로 바쁠 테니까 말이다.


  "우리 조카 HN야. 너는 고모한테 큰 딸이야. 늘 밝고 반듯하게 착실하게 똑똑하게 잘 자라주어 고맙고 늘 너를 위해 기도하고 응원한다는 거 잊지 마. 그리고 너는 우리에게 방학 때만 오는 손님이 아니라 우리 가족이란다. 사랑해."




5년 전 찍은 사진으로 친정집 아파트 산책길을 조카와만 걷다가 딸아이가 태어난 후 셋이서 같이 걸으니 감회가 새로웠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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