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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항상샬롬 Oct 05. 2020

날 버리고 도망간 그 녀석

이런저런 이야기 45

   결혼을 하고 5년 동안 난임으로 힘들어하다 큰 딸아이를 만나기 1년 전쯤 우리 부부는 남편회사의 발령으로 경기도 용인 외곽으로 이사를 했고 이사를 하자마자 파양 된 강아지

를 키웠다.


  닥스훈트 믹스견으로 한 살이었는데 다리가 길쭉한 닥스훈트라 연상하면 되는 강아지

였다. 보통 닥스훈트들은 다리가 짧은 블랙의 윤기가 좔좔 나는 강아지인데 우리가 키운 강아지는 엄청 다리가 길쭉한 롱다리 닥스

훈트였다. 이름은 까미였는데 나는 까미와 함께 하루에 서너 번씩 산책을 하곤 했다.


  우리가 살던 집은 에버랜드 근처 빌라였다. 그때 당시 주변지역 일대가 개발이 막혀 있어서 완전 논밭이 많고 빌라만 있는 그런 곳이었다. 다행히 인도가 길게 잘 닦여 있어서 인도를 걸어 까미와 함께 산책을  했다. 하지만 인도 위의 관리가 잘 되어 있지 않아서 잡풀들이 인도 양옆으로 무성히 자라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까미와 함께 산책을 하고 있었다. 목줄이 늘어나는 손잡이를 잡고 까미를 늘여줬다 줄여줬다를 반복했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 앞에 실뱀이 나타났다. 길이는 1미터 정도 되고 두께는 2,3센티 정도 되는 뱀이었다.

 "으아아악."

나는 너무 놀라 비명을 지르고 가만히 서 있는데 까미는 내가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벌써 나를 버리고 저만치 앞으로 쏜살같이 달려가고 있었다.


  목줄이 최대로 늘어나는 곳까지 간 녀석은 계속 앞으로 가지 못해 낑낑대고 있었고 나는 뱀이 나온 곳에서 반대쪽 잡풀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난 후 까미가 있는 쪽으로 달려

갔다. 어우 뱀을 보니 괜히 소름이 끼치면서 무서웠다.


  나는 까미가 있는 쪽으로 와서 주저앉아 까미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와, 이 배신자 녀석. 누나를 버리고 도망가기냐?"


  지 혼자 살겠다고 날 버리고 도망간 녀석. 다른 강아지들은 주인을 보호해주거나 용감히 싸워주기까지 한다는데 이 녀석은 뭐냐. 워낙 겁이 많은 녀석이어서 그러려니 했지만 그래도 크나큰 배신감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나저나 뱀이 나오는 동네에 내가 살고 있었다니. 나름 청정지역인건가?




  까미 덕분에 나는 난임 스트레스를 벗어날 수 있었고 삶의 활력소가 되고 힘이 되곤 했다. 까미와 함께 한지 1년 반이 지나 딸아이를 힘들게 가졌고 나는 6번의 유산

경력이 있어 딸아이를 지키려 열 달을 누워 지내야 했다. 그래서 까미를 돌볼 수가 없어 마당이 있는 지인분이 키우고 싶다 하셔서 보냈는데 참 미안하고 속상했던 기억이 난다.


   명랑하고 활발하게 잘 먹고 잘 지내고 있다며 근근이 소식을 전해 듣다가 그 지인분들이 이사를 가시면서 연락이 끊어져

는데  매년 이맘때 가을바람에 낙엽이 살랑살랑 떨어질 때면 까미 이 녀석이 생각난다. 까미와 뱀을 만난 때가 이맘때라서 그런가 보다.


"겁보, 까미야. 잘 지내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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