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항상샬롬 Apr 23. 2021

생애 첫 직장에서의 추억

이런저런 이야기 95

  내 생애 첫 직장은 20살에 들어갔던 곳이었는데 그 당시 중견 중소기업으로 본사였다. 콘크리트와 기타 건축자재들을 생산하는 회사였는데 자재부로 입사했다.


  자재부 이사님 한분과 계장님 한 분을 모시고 사무 보았는데 이사님이 믹스 커피 마니아셔서 하루에도 10번씩 커피를 타드려야 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싫었다는.


  자재부 옆에는 영업1부와 2부가 있었는데 부서원들도 많고 일도 많고 항상 분주해 보였지만 활기차 보였다.


  암튼 그중 영업 1부에서 일하던 왕고참 언니가 여름휴가를 가게 되어 며칠 동안 영업부 업무를 같이 봐준 적이 있. 영업부 과장님이 그때 나를 잘 보셨는지 그 언니가 몇 달 후 시집을 간다며 그만둘 때 자재부와 인사부에 요청을 해서 나를 영업 1부로 스카우트하셨다. 그래서 나는 자재부에서 영업 1부 직원이 되었다.


  그리고 자재부는 다시 새 직원을 뽑았고 영업부에서는 영업원들이 늘어나면서 자재부는 2층으로 올라갔다.


  영업부는 확실히 자재부에 있을 때보다 일도 많고 전화도 많이 받아야 했다. 10여 개의 공장에서 들어오는 주문을 받아야 하고 영업부 직원들이 수주받아 온 것들을 입력하고 정리하고 보고하고 결재받고 하는 등의 다양한 업무들이 있었는데 힘든 것보다 재미가 있었다. 활달하고 사람들을 좋아하는 내 성격에 딱 맞았다고나 할까.


  게다가 영업 2부에는 나보다 한 살 많은 언니 두 명이 있었는데 역시 성격도 좋고 착한 언니들이라 정말 좋았다. 나를 이뻐해 주고 좋아해 주니 그것도 감사했고 암튼 셋이서 엄청 친해져서 서로 일도 도와주고 셋이서 회식도 하고 주말에는 산에도 가는 등 즐겁게 직장생활을 했다.


  매주 월요일 오전에는 각 공장에서 공장장님들이 본사로 들어와서 하는 회의가 있었다. 내가 일했던 층에 있는 회의실에서 회의가 있었는그때마다 믹스커피 열댓 명 분량을 타서 회의실로 가져다 드리곤 했다.


  어느 날 월요일도 어김없이 회의하는 날이라 믹스커피를 탔고 언니들 중 내가 막내라서 거의 대부분을 내가 회의실로 커피를 가져다 드리는 것을 했는데 그날도 커피를 잘 타서 쟁반에 담아 회의실로 가져갔다.


  회의실 문을 열고 문 앞에 가까이 앉아 계신 분부터 커피잔을 놔드려야지 라는 생각을 하며 발을 앞으로 디뎠는데 아뿔싸. 나는 철퍼덕 소리를 내며 앞으로 정확하게 슬라이딩해서 미끄러졌다.


  야구선수들이 슬라이딩하듯이 온몸을 일자로 쭈욱 뻗어 쫘악 넘어진 것이다.

"엇.", "아이고!", "이런이런.", "미스리, 괜찮아?", "흠흠." 등등의 말들과 웃음을 참는 소리도 들리고 커피는 바닥에 다 쏟아져 있고 쟁반은 저 멀리 날아가 있고 회사 유니폼 가슴 쪽에도 커피가 물들어 있는 등 정말 총체적 난관이었다.


  나는 너무 창피하고 얼굴이 화끈거려서 벌떡 일어났고 밖에서 이 모습을 본 영업부 언니들 두 명이 후다닥 달려와 나를 일으켜 세우고 탕비실로 가게 한 뒤 뒤처리를 다 해주었다.


  탕비실에 도착한 나는 진짜 닭똥 같은 눈물이 툭툭 떨어졌다. 뭐가 그리 서럽고 슬펐는지. 흐흐. 언니들은 나를 한참 위로해주었고 몇 달 동안 회의실에 커피를 가져가는 일을 하지 않게 해 주었다.


  이런 창피한 사건도 있었지만 영업부 과장님들, 영업 부원들 그리고 두 언니들까지 모두 좋은 분들이라 즐겁고 재미있는 추억들이 많은 내 생애 첫 직장이었는데 가끔씩 커피 쟁반 슬라이딩 사건이 떠오르면서 이때가 그립다. 후후.



진짜 야구선수처럼 저렇게 슬라이딩했었다는. 쩝.

https://brunch.co.kr/@sodotel/350


  

작가의 이전글 국민학교 입학식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