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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항상샬롬 May 07. 2021

아빠가 창피했을까?

이런저런 이야기 100

  재수를 해서 대학교를 들어간 나는 첫 등록금은 1년 동안 내가 직장을 다니면서 모아둔 돈으로 냈고 그다음 학기의 등록금부터는 부모님이 주신 돈으로 다녔다.


  1학년 2학기 등록금을 내야 했던 어느 날 엄마는 아빠의 회사에 가서 대학교 등록금을 받아오라고 심부름을 시키셨다. 집에서 1시간여를 넘게 지하철을 타고 아빠의 회사로 향했다. 아빠의 회사 근처 역에서 만나기로 아빠와 전화통화를 하고 역 앞에서 아빠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창 바쁠 때 오셨던 건지 아빠는 작업복을 입고 나오셨는데 네이비색 작업복 잠바에는 나무톱밥이며 본드 자국 등이 마구 묻어 있었다. 아빠는 피아노를 만드는 기술자이셨다가 그 당시에는 가구공장을 운영하고 계셨고 가구를 만드는 기술이 있으셨다.(지금도 일하고 계시는데 친정오빠와 함께 가구공장을 운영하고 계신다.)


  20여분을 기다린 나는 아빠가 반가워서 "아빠!"라고 부르며 아빠에게 다가갔고 아빠는 멀리서까지 오게 해서 미안하다며 등록금이 든 봉투를 단단히 잘 챙겨서 나에게 주셨다. 아빠는 바쁠 때 나온 거라 바로 금방 들어가 보셔야 한다고 했고 조심히 집에 잘 들어가라고 하셨다. 나도 아빠에게 "아빠, 이따 집에서 봐요. 갈게요."라며 씩 웃어 드리고 집으로 향했다.


  며칠 후 엄마와 둘이서 집에 있는데 엄마가 아빠와 내가 만났던 그날 일을 이야기하셨다. 아빠는 지저분한 작업복을 입고 급하게 나를 보러 나왔는데 멀리서 자기를 보고 "아빠!"라고 크게 부르며 오는 내가 너무 고맙기도 하고 미안했다는 얘기를 하셨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나에게 그날 아빠가 창피하지 않았냐고 물어보셨다.


  사실 아빠의 지저분한 작업복이 나도 창피하고 싫었다. 나는 아빠가 다른 아빠들처럼 단정하고 멋진 양복을 입고 출퇴근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 아빠이고 엄청 바쁘실 때 나 때문에 급하게 나오신 건데 그럴 수도 있지 라는 생각이 들었고 괜히 나 때문에 급하게 나오시느라 옷을 갈아입을 시간조차 없으셨을 거라는 생각에 죄송하기도 했다. 그리고 아빠 얼굴을 보니 그냥 반가움이 더 컸다는 말을 하자 엄마는 "우리 딸 다 컸네."라며 흐뭇해하시고 대견해하셨다.


  아빠는 무뚝뚝하신 편이고 표현을 잘 안 하시는 분이지만 정이 많고 사람을 좋아하고 약주 한잔 하시면 말이 많아지시는 그런 분이시다. 어릴 적에는 그런 아빠가 어렵고 싫었지만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나도 어른이 되어보니 그런 아빠가 다 이해가 되고 이제는 아빠의 사랑도 느낄 수 있다.


  내일은 어버이날. 저번 주에 미리 찾아뵈었고 엊그제 양가 부모님께 카네이션 화분을 보내드렸다.(매년 어떤 선물을 할까 늘 고민하면서 다른 것들을 보내드림) 그리고 오늘은 용돈을 입금해 드렸다. 내년에는 두둑하게 더 많이 드렸으면 좋겠다. 그리고 지금처럼 늘 건강하시길 기도해 본다.


  

부모님께 보내드린 카네이션 화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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