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항상샬롬 Apr 07. 2022

너무 범생이라 걱정이에요

시시콜콜 육아 이야기 45

  12살이 된 첫째 딸아이는 엄청 바르고 모범생인 아이다. 어린이집을 다닐 때부터 자기 물건을 절대 잃어버리지 않고 늘 잘 챙겼고 선생님의 말을 백 퍼센트 잘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런 아이였다.


  5살 때 어린이집에서 선생님이 열명 정도 되는 같은 반 아이들에게 자기 의자에 그대로 앉아서 잠깐만 기다리라고 했더니 우리 딸 혼자 선생님이 오실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던 그런 아이였다. 게다가 아이들에게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며 잔소리까지 해대는 아이였다.


  그리고 아이들이 다 놀고 나서 물건 정리가 안되어 있으면 우리 딸이 혼자 그걸 다 해둔다는 선생님의 말을 듣고 처음에는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계속 그러는 모습을 보이자 답답하기도 속상하기도 하고 그랬다.


 6살 때는 어린이집 선생님이 부모님들께 존댓말을 써야 한다고 하자 그날 집에 오자마자 존댓말을 바로 쓰는데 어찌나 놀랍던지. 그렇게 1년간을 존댓말을 잘하다가 7살이 되니 다시 반말을 하는 딸아이였다.


  오죽하면 나는 선생님들과 정기적으로 상담하는 시간에 "우리 딸은 너무 범생이라 걱정이에요."라는 상담을 늘 했다. 다른 엄마들과는 정말 완전히 정반대인 상담, 복에 겨운 상담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정도였다.


  너무나 곧이곧대로 하라는 대로만 하고 전혀 한치의 오차도 벗어나지 않는 그런 성격이 엄마인 내가 보기에는 너무나 융통성이 없고 답답해 보여서 걱정이 많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작년 초등 4학년 2학기가 되자 딸아이는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주변 친구들이 항상 딸에게 연필과 지우개, 쓰레받기, 빗자루 같은 학용품들을 늘 빌려가는 게 너무 싫다는 딸아이의 말을 들었다.

 

  담임선생님은 우리 딸처럼 연필을 5개 이상씩 잘 깎아서 다니고 모든 준비물을 완벽하게 가지고 다니는 아이들이 거의 없단다. 게다가 자기가 빌려준 물건들을 먼저 쓰지도 않고 친구들 먼저 쓰고 나서 자기가 쓰다 보니 매사 모든 일을 늦게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나 딸아이는 마음이 여리고 착해서 아이들이 못하는 게 있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무조건적으로 도와주는데 그러다 보니 친구들은 이 딸아이가 도와주면 그러려니 하게 되고 고맙다는 말도 잘하지 않게 되었다. 또 모르는 게 있으면 뭐든지 달려와서 사소한 것까지도 딸아이에게 물어본다는데 그것도 너무 스트레스라고 딸아이는 말했다.


  친구들에게 싫다, 하지 마라, 안돼, 난 안 해라는 거절의 말을 절대로 못 하는 딸아이는 말과 행동이 좀 세고 성격이 센 친구들에게 늘 당하기만 해서 집에 오면 엄마인 나만 붙잡고 울고불고하다 보니 너무 안쓰럽고 나도 화가 나고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경우가 많았다.


  당연히 담임선생님과 자주 상담전화를 했고 선생님은 딸아이를 힘들게 하는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는 등 바로바로 조치를 취해 주셨지만 딸아이의 천성적인 성격은 쉽게 변하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역시 아직도 많이 부족한 엄마인 것 같다. 하도 속상하고 답답하니 너도 그 친구들과 똑같이 하라고. 싫어, 안 해, 하지 마라고 크게 한 번만 말해보라고 말하곤 했는데 그것보다 딸아이의 마음을 더 헤아려주고 그냥 인정해주고 못하겠으면 하지 말라고 대신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고 말했어야 했는데 말이다.


  딸아이가 5학년이 된 지 이제 한 달이 조금 지났는데 점점 더 단단해지고 강해지고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는 딸이 되길 기도해본다. 엄마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들어주고 위로해주고 공감해주고 응원해주는 것 밖에는 없는 듯하다.


  자식 걱정은 평생이라더니 아이들이 한 살 두 살 먹을 때마다 점점 더 그 말이 와닿는다.


  

https://brunch.co.kr/@sodotel/50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