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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항상샬롬 Oct 19. 2020

나는 미아가 될 뻔했다

이런저런 이야기 50

  며칠 전 둘째를 놀이터에서 잃어버린 줄 알고 5분 동안 식겁한 적이 있었다. 사실 나도 5,6살 때 즈음 미아가 될 뻔한 적이 있다.


  그날도 나는 오빠와 어김없이 공놀이를 하며 놀고 있었다. 집 앞 길가에서 놀고 있었는데 공이 내 뒤로 굴러가자 오빠는 주워오라고 했고 나는 공을 줍기 위해 공을 쫓아갔다. 공이 한참 앞으로 굴러갔는데 공을 찾으러 가다 보니 공이 안보였다. 뒤를 돌아보니 오빠도 안 보이고 자세히 주변을 보니 내가 살던 동네가 아니다.


  다시 오빠가 있던 쪽으로 돌아가야지 하면서 뒤를 돌아 열심히 갔는데 아무리 가도 오빠도 보이질 않고 내가 살던 동네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계속 걷고 또 걷다 보면 나오겠지 싶어 열심히 걸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낯선 곳이 계속 나오자 무서운 생각이 들었고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 엉엉 울기 시작했다. 한참을 울고 있는데 마침 지나가던 여순경 언니가 나에게 오더니 왜 울고 있냐고 물었고 나는 계속 울면서 아는 대로 얘기를 한 듯하다. 그때 당시만 해도 1980년대 초라 부모님과 바로 연락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나는 집 전화번호도 모르고 가족 이름과 내 이름만 알고 있었다. 그것도 우느라 제대로 전달을 못했다. 여순경 언니는 를 파출소로 데려갔고 나는 파출소 앞에 서서 여순경 언니가 준 과자를 먹다가 울다가를 반복하고 있었다.


  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엄마는 내가 없어졌다는 오빠의 말을 듣고 혼비백산하 집 근처를 돌며 나를 찾다가 안 되겠다 싶어 파출소에 가서 미아신고를 했고 아빠는 아직 퇴근 전이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저녁 무렵 나는 파출소 앞에 앉아 여순경 언니가 먹으라고 잔뜩 사준 과자를 옆에 쌓아두고 열심히 과자를 먹은 듯하다. 아마도 나를 찾으러 아빠, 엄마가 올 거라는 믿음이었는지 절대로 파출소 안에는 들어가지 않으려 했단다. 그런데 잠시 후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 ㅇㅇ이 아니야?"

"ㅇㅇ아, 여기서 뭐 하고 있어?"


  그 이름을 부른 사람은 바로 작은 아버지였다. 그리고 작은아버지 옆에는 아빠가 있었다. 아빠는 퇴근 후 근처에 사는 작은 아버지와 약속이 있어 같이 걸어가는 중이었는데 작은 아버지는 파출소 앞에서 울고 있는 나를 우연히 보았고 아빠는 여순경 언니의 자초지종을 듣고 감사하다는 말을 연거푸 한 후 내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니 엄마는 나를 잃어버린 줄 알고 하도 울어 눈이 퉁퉁 불어있었고 오빠도 울다가 지쳐 잠이 들어 있었다.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얼싸안고 다시 엉엉 울었다.


  가족들이 모이는 날이면 자주 이 얘기가 나오곤 했는데 늘 생각할 때마다 아찔하다.


여순경 언니가 나를 발견하지 않았다면?

내가 파출소 앞에 있지 않고 파출소 안에 있었다면?

작은 아버지가 그때 그 길로 들어서지 않았다면?

작은 아버지가 나를 보지 못하고 지나갔다면?


  아마 지금처럼 살고 있지 않았을 것 같다. 고아원으로 보내졌을 수도 있고 해외로 입양 보내졌을 수도 있고 말이다. 아무튼 그때 나를 돌봐준 여순경 언니에게도 감사하고 나를 발견한 작은아버지에게도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느낀다.


  그리고 네 살 둘째 녀석에게 한시도 눈을 떼서는 안 되겠다고 다짐해 본다.

  


며칠전 둘째를 오분동안 잃어버렸던 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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