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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항상샬롬 Oct 16. 2020

13년 만에 면접을 보고 오다

이런저런 이야기 49

  오늘 오전에 면접을 보고 왔다. 13년 만에 보는 면접이다. 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을 계속하다가 결혼을 하고 서너 달을 쉬고 1년 반 동안 초등수학 학원강사로 일한 것이 마지막 직장생활이었다. 그리고 6살 차이 나는 두 아이를 육아하면서 경력단절이 된 후 정말 오랜만에 보는 면접이었다.


  어제 지역 카페에 올라온 구인 글을 보고 문의를 하니 이력서를 지참해서 오늘 오전에 면접을 보라는 연락을 받았다. 집 근처 학원에서 행정사무원을 구하는 것이었는데 근무시간도 길지 않아 아르바이트식으로 할 수 있겠다 싶어 지원을 했다.


  연락을 받고나서부터 면접을 위해 준비를 했다. 미리 만들어둔 이력서를 수정, 보완한 후 저장해 두었고 면접을 보러 갈 때 입고 갈 옷들인 블라우스, 바지, 가을 코트, 스타킹 그리고 구두까지 준비해 두었다. 너무 오랜만에 갑자기 보는 면접이라 그런지 딱히 입을 옷도 없고 구두도 맘에 드는 게 없어 한참을 고민하다 선택을 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아이들을 씻기고 재우고 나서 나는 이력서를 미리 뽑아두려고 했다. 그런데 어제 내가 많이 피곤했는지 아이들을 재우면서 나도 같이 잠이 들었고 오늘 아침에서야 일어났다.


  오늘은 초등학생 큰 딸아이도 학교 가는 날이라 준비를 시키고 둘째 아들까지 어린이집 갈 준비를 마치고 둘 다 학교와 어린이집으로 데려다준 후 집으로 돌아왔다.


  아침을 후다닥 먹고 머리를 감고 이력서를 출력하려고 컴퓨터 방으로 들어갔다. 저장해둔 이력서를 화면에 띄우고 인쇄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노란색 토너가 부족하다는 알림이 뜨더니 출력이 안된다. 헉. 엊그제만 해도 잘되었는데 갑자기 왜 이러는 거냐.


  나는 완전 멘붕이 왔다. 1시간 후면 면접인데 큰일이다 싶었다. 프린터기의 전원을 다시 끄고 켜보았다. 혹시나 하고 한번 더 인쇄 버튼을 눌렀더니 다행히 출력이 된다. 휴. 살았다 라며 이력서를 봤는데 '이력서'라는 제목의 글자만 안 찍혀있다.


  하아. 짜증이 나고 울고 싶어 졌다. 왜 꼭 이렇게 중요한 날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어떡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집 앞 문방구나 집 근처 행정복지센터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부랴부랴 옷을 챙겨 입고 오랜만에 화장을 하고 마스크를 쓰고 USB를 챙겨 집을 나왔다. 그러면서 번쩍 드는 생각. 아파트 관리소에 가서 부탁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관리소 실장님은 흔쾌히 이력서 한 장을 출력해주셨고 흰 봉투까지 챙겨

주시려고 했다. 그리고 좋은 결과가 있길 바란다라는 말까지 해주시는데 완전 감동이었다. 합격하면 맛난 간식을 사드려야겠다.




  면접 볼 곳에 도착하니 약속한 시간의 10분 전이었다. 슬슬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으리으리한 건물의 회사도 아니고 정식직원도 아닌 시간제 계약직 면접이었지만 13년 만에 보는 면접이라 그런지, 경력단절로 인해 자신감이 떨어져서 인지 긴장이 많이 되었다.


  결혼 전에 레크리에이션 강사로도 활동했던 나였는데 이렇게 쫄보가 되다니 참 슬프다. 결혼을 하고 나이가 드니 왜 이리 점점 소심해지고 겁이 많아지는지 모르겠다.




  건물 계단을 올라가 2층 학원에 도착했다. 여자 원장님이 면접 내내 편하게 대해주셔서 그래도 나름 면접을 잘 보고 나왔다. 이번 주까지 지원한 다른 사람들도 면접을 본 후 연락을 주겠다고 하셨다.


  건물을 나와서 바로 옆에 있는 마트에 들 필요한 생필품을 몇 가지 사서 걸어가는데 신발의 느낌이 이상하다. 헐. 왼쪽 발 구두 밑창이 툭 떨어져 나간다. 그리고 잠시 후 오른발 구두 밑창도 덜렁거린다. 에잇 모르겠다 하며 덜렁거린 밑창도 떼어낸 후 휴지통에 버리고 집으로 향했다. 작년인지 재작년인지 사서 별로 신지도 않은 구두였는데 하도 오랜만에 신어서 그런 건지 접착된 부분이 완전히 깔끔하게 떨어진 듯하다.


  그래그래. 내 삶이 이렇지 뭐. 늘 희한하고 황당한 일 투성이다. 흐흐. 프린터가 갑자기 안되고 신발 밑창이 양쪽 다 떨어져 나가고 다 좋다 그래. 오늘 면접에 좋은 결과만 있으면 된다.



깔끔하 완벽하게 떨어진 구두 밑창. 이 신발을 신고 십 분을 걸어 집에 왔다는.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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