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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항상샬롬 Jul 01. 2020

설거지하다 엉엉 울어버리다

15년 차 동갑내기 부부의 결혼생활 이야기 9

  결혼하기 전에 내가 할 수 있는 요리는 계란 프라이, 라면, 샌드위치, 떡볶이 정도였다. 그런데 이제 결혼을 했으니 요리는 거의 전적으로 내 담당이 되었다. 그래서 요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먼저 요리책 쉬운 것을 두세권 샀는데 숟가락으로 계량하는 요리책이 그당시 한창 인기여서 그 책을 보면서 하나둘 요리를 따라 해 보았다. 그랬더니 요리가 완전 내 취향이었다. 너무 재미있고 신기했다. 같은 요리를 하더라도 이렇게 하면 이런 맛이 저렇게 하면 저런 맛이 난다니. 정말 재미있었다. 특히나 요리가 더 재미있었던 것은 남편이 복스럽게 잘 먹어주었던 이유도 있었다.


  남편은 맛있어도 맛없어도 요리를 맛있게 다 잘 먹어주었는데. 나름 미각이 뛰어난 사람이라 이건 이게 부족하고 저건 저게 부족한 것 같다고 바로바로 얘기를 해주어서 내가 요리 솜씨가 늘어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그래도 내가 한 음식들이 객관적으로 맛없는 편은 아니었다. 쿨럭.


  남편은 내 음식이 거의 다 맛있는 편이라고 말해주었는데 지금까지도 별로다 라고 말하는 음식은 된장찌개다. 시어머니께서 음식을 정말 잘하시는데 김치에서 멘보샤까지 못하시는 게 없을 정도다. 그리고 된장찌개 정말 환상적으로 끓이신다.


  그런데 된장찌개를 시어머니에게 그대로 배워서 내가 요리를 해도 시어머니가 하신 그 맛이 나질 않는다. 음식은 손맛이라는 게 맞는 말인것 같다.




  결혼을 하고 몇 달 후 시아버지의 생신날이 되었다. 첫 번째로 맞이하는 부모님 생신이니 내가 나름 그동안 연습했던 요리들을 몇 가지 만들어서 생신상을 차려드렸다. 그랬더니 정말 너무나 좋아하시고 맛있게 드셔주셔서 나도 기분이 좋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남편도 놀라면서 감동을 받았다.


  생신파티를 끝내고 시부모님들은 집으로 돌아가신 후 남편이 "여보, 고마워. 아버지 생신상 차려드리느라 고생 많았어."라고 얘기를 하니 참 뿌듯했다.


  그리고는 남편이 상을 치우고 집안을 정리하고 내가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설거지를 열심히 막 하고 있는데 갑자기 친정부모님 생각이 나는 것이었다. '매일매일 요리하시던 엄마는 얼마나 힘드셨을까. 그러고 보니 아빠, 엄마에게 내손으로 요리해서 상 차려드린 적이 한 번도 없었네.'라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눈물이 막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설거지를 하다 수세미를 들고 그냥 엉엉 울어버렸다. 결혼하면 엄마 생각이 많이 난다더니 사실이었다.


  남편이 놀라 다가와서 왜 우냐고 묻자 친정부모님 생각이 나서 그랬다고 하니 남편은 "여보, 장인어른 장모님 생신 때는 내가 요리해서 차려드릴게"라고 말해주었다. 말뿐이라고 해도 마음이 참 고마워서 눈물이 그쳐졌다.


  정말로 남편은 결혼하고 몇 년 후에 친정부모님께 백숙을 맛있게 끓여드렸고 지금도 자주 양가 부모님들께 맛있는 요리를 직접 만들어 대접해드리곤 한다. 남편도 시어머니를 닮아서 그런지 한번 요리를 하면 요리 스킬이 금방금방 늘었다. 아마 맘먹고 하면 나보다 더 요리를 잘하지 않나 싶다.


  그런데 나는 지금도 요리는 좋은데 설거지는 너무 하기 싫다. 흐흐.


결혼해서 처음 차린 상차림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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