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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헤어질 뻔했다

15년 차 동갑내기 부부의 결혼생활 이야기 7

by 항상샬롬

결혼 전 우리는 친구에서 연인이 된 사이인데, 한창 연애 중인 어느 날 한 번은 정말 남편과 헤어지려고 마음먹었던 날이 있었다.

나는 시간 약속을 하면 30분 전에 또는 한 시간 전에 미리 나와서 약속 장소 근처 서점이나 쇼핑몰 등에서 시간을 보내며 기다리는 편인데 남편은 약속시간에 정말 정확하게 딱 맞춰 나오는 스타일이었다.


어느 날 남편이 사는 집 근처에서 만나기로 하고 내가 약속 장소에 30분 전에 나와 기다리고 있는데 남편이 제시간에 안 나오자 전화를 했다. 그랬더니 지금 오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그리고 나는 1시간을 기다렸다.

무슨 일이 있나, 늦을만한 일이 있나 보다 하고 마냥 기다리다가 문득 든 생각이 이건 뭐, 하루 이틀도 아니고 늘 내가 기다리고 물론 내가 먼저 미리 나오는 시간도 있지만 한 번도 나보다 일찍 나온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게다가 오늘은 약속시간에서 무려 1시간이나 기다리게 하다니. 너무너무 화가 나서 안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다시 전화를 해서 '나 그냥 집에 가겠다. 오늘은 만나고 싶지 않다. 매번 기다리는데 좀 지친다. 래서 이렇게 약속시간을 안 지키는 당신이랑 계속 사귀는 건 생각 좀 해봐야겠다.' 고 화를 내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집으로 가려고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갔다. 남편이 계속 전화를 하는데 몇 번은 안 받다가 마지막에 전화를 받자 잘못했다며 지금 어디냐고 물었다. 화가 안 풀려서 나 진짜 오늘은 집에 갈 거니까 그냥 내버려 두라고 나중에 얘기하자 하니 다시는 안 그런다면서 한 번만 봐달라는 것이다.


나는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서로를 존중해주고 지킬 건 지키면서 배려해줘야 한다고 늘 생각하고 살았다.


결국 남편을 만나서 용서를 하고 화해를 했는데. 나중에 결혼해서 시어머니와 얘기 중에 이런 적이 있었다고 하니 시어머니는 '나랑 사귀는 건 몰랐는데 만나는 사람이 있나 보다 했고 어느 날 침대에 누워서 통화하는 걸 들었는데 씻지도 않고 빈둥대다가 전화를 받더니 지금 나가는 중이다 라고 천연덕스럽게 얘기하는 걸 듣고 한 소리하셨다'라고 알려주시는 것이다.


허허허. 그냥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났다. 옆에서 듣고 있던 남편은 딴 방으로 도망을 갔고 말이다. 흐흐.


지금도 남편은 나뿐만 아니라 모든 약속시간을 딱 맞게 나가는데. 참 신기한 게 늦지는 않는다는 거예요. 적어도 2,3분 전에는 꼭 약속 장소에 도착한다.


시간 약속에 대한 건 진짜 남편이랑 안 맞는 부분 중 하나인데. 신혼초에도 이걸로 자주 싸웠던 기억이 난다. 근데 지금은 그냥 포기하고 내려놓고 남편의 단점을 수용하니 마음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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