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입원한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카트에 잔뜩 가져온 박스들을 정리했다. 엄마를 위해 오래 도움을 주실 간호사분들과 요양보호사님들을 위한 간식들을 두세 박스 챙겨 와서 드렸다.
검사란 검사는 질색팔색을 하는 엄마를 달래고 달래 치료하고 검사하느라 너무나 많이 애쓰셔서 고마움이 더 컸다.
또 요양보호사님들은 엄마가 화장실 갈 때, 기저귀에 볼일을 볼 때마다 늘 친절하고 신속하게 처리를 잘해주셔서 그것 또한 감사했다.
엄마랑 함께 병원에서 지내는 시간들은 그다지 힘들지 않았고 오히려 더 좋았다.
먹고 사느라 내 일을 하고 내 새끼들 키우느라 엄마를 자주 보지 못했었는데 일주일 동안 매일 엄마 곁에 있는 시간들은 너무나 행복했다. 그래도 엄마를 자주 찾아뵙지 못할때는 전화로 자주 수다를 떨긴 했지만 그래도 길고 긴, 끝이 없는 엄마와의 밀린 수다는 재미있고 좋았다.
엄마의 어렸을 적 얘기,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왜 그리 일찍 돌아가셨는지에(외할머니는 엄마가 고등학교 때 교통사고로, 외할아버지는 오빠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돼서 질병으로 돌아가셨다) 대해서도 자세히 들었다. 또 엄마와 아빠의 연애이야기, 나랑 오빠의 어릴 적 이야기를 듣고 또 들었다.
엄마는 코에 산소호흡기를 끼셨고, 목소리가 계속 쉬게 나왔다. 잔기침도 자주 하셨다. 식사 후 드시는 약의 종류도 엄청 많았고 소변줄과 여러가지 기계들이 잔뜩 달려 있었다. 매일매일 받는 검사도 많아서 엄마는 많이 힘들어하셨다.
내가 옆에 있어서인지 엄마는 특히 피검사를 받지 않겠다고 짜증과 화도 자주 내셨다. 그러다가 케모포트(주삿바늘을 피부에 직접 넣지 않아도 검사할 수 있는 칩)가 있다는 말을 듣고 삽입도 했지만 그래도 모든 피검사를 케모포트로 하는 것은 아니었다.
엄마는 4인 다인실에 계셨는데 2주 동안 그곳에 계신 분들과 다 친해져 계셨다. 엄마의 저음 목소리가 좋아서인지 엄마가 이야기를 재미있게 잘하셔서 그런지 다인실에 계신 분들 모두 엄마를 좋아하셨다.
특히 맞은편에 계시던 환자분은 사회복지사였는데 엄마한테 언니라 부르며 엄마를 너무나 잘 챙겨주셨고 좋은 정보들도 많이 주셨다.
낮에는 쉬지 않고 얘기도 잘하시고 기분이 좋으셨던 엄마가 밤만 되면 돌변을 하셨는데 항암부작용으로 생긴 섬망증상이 나타났다.
여기가 어디냐, (간호사분들을 가리키며) 저 사람들을 왜 나를 밖에 못 나가게 묶어놓고 감시를 하냐, 여기는 답답하게 커튼을 왜 이렇게 쳐놓았냐, 여기는 커튼으로 방을 만들어 돈 받는 곳이냐, 빨리 집에 가자고 계속 얘기를 하셨다.
나는 그럴 때마다 매일 똑같은 말을 반복해서 했다. 엄마는 유방암으로 지금 입원을 했고 항암치료를 1차 받다가 부작용이 생겨 중단을 했다, 저기 있는 사람들은 간호사분들이고 한두 시간마다 오셔서 봐주시는 분들은 요양보호사님들 이라고 설명을 해드렸다.
그러고 나면 잠시뒤 엄마는 살짝 코를 코시며 잠이 드셨다. 엄마가 잠이 드시면 나는 병원 건물 밖으로 나와 가족들에게 돌아가며 전화를 하기도 하고 밤산책을 하기도 했다. 건물 밖을 계속 돌고 또 돌면서 건물 안에 계신 모든 분들의 회복과 건강을 위해 기도를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