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아직도 무한도전을 보는 남자입니다."
세월의 흔적이 짙어진 외모 탓에 자신감이 없는 건 당연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 부정적인 생각에 계속 머물러 있을 생각은 없었다.
앞으로 나아가는데 방해되는 메아리 따위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진짜 내 목소리를 찾아 나설 때라고 느껴 글쓰기 클래스를 신청했다.
지난 10년간 내가 한 행동 중 손에 꼽을 만큼 잘한 일이었다.
수업을 들으며 글을 쓰는 즐거움을 다시 발견했고, 내가 어떤 색의 연필을 쥐고 있는지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수업이 끝날 무렵, 내가 쓴 글들이 작은 책자로 만들어졌다.
스스로 만족스러운 색으로 좋은 그림을 그렸다 생각하며 벅차오르는 감정에 기어이 눈물이 터져버렸다. (사실 글을 쓰는 동안 더 많이 울었다.)
눈물이 많아지는 나이 듦을 무색하게 할 무언가가 절실했다.
또다시 기계적인 소개팅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라는 그림을 보여주자! 그렇게 다짐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것일까?
글쓰기 클래스로 나의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보니 "진짜 내 생각"이 궁금해졌다.
성장하며 입력된 정보로 성숙해진 생각, 즉 타인의 간섭이 배제된 '나다운 생각'을 찾고 싶었다.
특히 남들 다 좋다고 하고 나도 좋다고 생각했던 '여행'이 왜 최근에 싫어졌는지 궁금했다.
곧바로 연차를 내고 제주도 우도에 갔다.
바이크를 타고 흑돼지에 와인을 곁들여 먹는, 단 두 가지 목표를 설정한 여행이었다.
예전처럼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았다.
오히려 차분한 마음으로 나를 알아가려는 다짐만 있었다.
늦은 오후 제주도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 미리 알아두었던 흑돼지집으로 향했다.
맛있는 음식과 기분을 돋우는 와인 한 병을 시켜 열심히 먹었다.
그러면서 "역시 내가 좋아하는 건 이런 거야"라고 확신했다.
돼지고기와 함께 20대 시절, 처음 내 돈으로 사 먹었던 삼겹살의 추억이 코끝을 스쳤다.
오랜만에 마신 와인은 반대로 외롭게 와인을 마셨던 지난 날을 상기시켰다.
그래도 혼자라서 이런 곳에 왔다는 생각에, 늘 했던 산책을 하기로 했다.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오니 숙소까지 1시간이 걸린다고 되어 있었다.
온도도 괜찮아서 쭉 걸었다.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맴도는 와중에 상당히 이국적인, 불 꺼진 레스토랑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 살면서 처음으로 '누군가와 함께 왔으면 좋았을 걸' 하며 읊조렸다.
앗차 싶었다.
마흔을 앞두고 무슨 주책인가 싶어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샤워하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문제는 다음 날에도 계속되었다.
바이크로 우도를 한 바퀴 돌며, 어제의 포식은 이미 잊히고 계속 혼자라는 사실이 의식되기 시작했다!
분명 혼밥, 혼여행에 개의치 않던 나였는데, 이제 와서 이러는 것을 보면 지난 소개팅들이 단순히 주변 환경에 편승한 것만은 아니었다. 이 감정이 생소했지만 익숙하다.
우도에 도착해서 바이크를 빌려 열심히 내달렸다. 이런 모터 달린 바이크는 처음이라 무서웠지만 곧 익숙해졌다.
옆자리의 빈 공간이 신경 쓰였지만, 얼굴을 감싸는 바람을 느끼며 애써 외면하려 했다.
하지만 저마다 연인과 함께 온 바이크와 자전거가 눈앞에 아른거리니 마음이 힘들었다.
그러면서 이제는 인정했다. "나 진짜 외롭구나."
제주도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는 다시 내가 좋아하는 요소들을 정리했다.
나는 피자, 치킨 그리고 고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예전처럼 술은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그러나 이제 혼자 하는 여행은 싫다.
나는 책을 좋아한다. 그러나 자기계발서는 안 좋아한다.
나는 게임을 좋아한다. 그러나 경쟁하는 게임(예: 롤)은 하지 않는다.
나는 운동을 좋아한다. 특히 부상 없는 운동을. 그러나 스포츠는 싫어한다.
나는 개그와 유머를 좋아한다. 다만, '무한도전'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 한해서.
이렇게 나 자신에 대해 제대로 알고 나니, 앞으로 나를 이야기할 때 훨씬 기분 좋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 자랑스러울 수 있게 되었다.
적어도 '안녕하세요! 일 마치면 책과 운동하고, 주말에는 게임하며 시간 되면 여행하는 39세 남자입니다!'라는 말 대신, '안녕하세요. 아직도 무한도전을 보는 남자입니다.'라고 말하게 될 것 같았다.
이렇게 이야기한다고 해서 소개팅에서 무조건 성공하리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단지 이것이 '나를 위한 만남'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제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적어도 내가 아닌 모습으로 상처받을 일은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렇게 나는 회사 후배에게 소개팅을 받았고, 그것은 사랑으로 이어졌다. '나다운 나'를 찾은 후에야 비로소 진정한 인연을 만날 수 있었다.
다음 편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