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 40번 한 남자의 소개팅 후기

마침내 사랑을 찾았습니다.

by 달글이

첫 카톡, 그리고 운명의 시작


후배가 전해 준 전화번호를 받았다.

1년 전부터 외롭다며 소개팅해달라고 광역 도발을 시전 했으니, 그 후배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선배님, 이상형이 어떻게 되세요?"

"귀여우신 분이 좋지요!"

예전 같았으면 "착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소개팅을 40번이나 하다 보니 알겠다.

세상엔 착하지 않은 사람은 없고, 나와 맞느냐 맞지 않느냐 그 차이만 있을 뿐!

일단 만나야 그 판단이 선다는 느낌에 만나 뵙고 싶었다.

예전과 달라진 마음가짐이라면 "상대방이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내 진솔한 모습을 보여주자였다.


첫 메시지의 고민


연락처를 받은 그날 저녁이 되고 첫인사를 어떻게 할까 고민고민을 했다.

일부러 특이한 사람인 척 '안녕하세요, 무한도전 좋아하는 OO입니다. 하하!' 하고 선뜻 보낼 용기는 없었다.

대신 최대한 "내가 재미있되, 상대방이 공감할 수 있는 대화"가 되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선톡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후배에게 번호 받고 연락드려요! 늦은 시간인데 놀래시진 않으셨나요?"

답은 곧장 왔다.

"아니요, 연락받고 알고 있었어요."

그것이 첫 대화였다.

예전 같았으면 그 한 마디에 또 분석하려 들고 영상을 찾아보고 자질구레한 생각들이 들었겠지만 "저녁은 드셨어요?"라고 답장을 보냈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대화


그 후로 여러 가지를 물으며 솔직한 나를 보여주었다.

책을 좋아한다고 했더니 인생책이 뭐냐는 물음이 돌아오고, 인생책을 말해주었다.

운동도 한다고 했더니 자기도 운동을 한다며 필라테스와 헬스를 동시에 한다고 했다. 너무 멋있는 사람이었다.

음식에 대해서 이야기하다 "오이"를 싫어한다는 비밀 아닌 비밀도 알게 되었다.

탁구처럼 핑퐁대는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꾸며내지 않은 담백한 그녀의 말들이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그 때문일까? 그녀가 "친절"하다고 느꼈다.

카톡 대화는 폭포수처럼 쏟아지지 않았지만, 조용한 산골짜기에서 시작된 샘물처럼 조용히 흐르는 느낌이었다.

첫날 대화 이후에 점심에 뭐 먹었는지, 무슨 운동을 했는지,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며 점점 스며들었다.

간단한 대화들이 주를 이루었지만 서로의 시간 속에서 우리가 존재하고 있다는 감각이 너무 좋았다.

원래 소개팅 전까지 대화하지 말라는 한 유튜버의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들었다면 절대 느낄 수 없었던 감정이었다.

그리고 상대가 나를 좋아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같은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직 만나지 않았는데 첫 만남에 목소리로 대화할 때 할 말이 없으면 안 되니까 다양한 말감 들도 준비하기 시작했다.

어떤 옷을 입을지, 어떤 화제로 대화를 이어갈지 고민하며 설레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처음으로 진정한 나를 보여줄 용기가 생겼다.


첫 만남, 그리고 운명


만남은 평일이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파스타를 위해 분위기 좋은 음식점을 예약 어플을 활용했다.

그날 칼퇴를 어떻게든 한 뒤에 미용실에서 헤어드라이를 받았다.

만오천 원 정도 결제하면 헤어스타일 세팅을 해주는데, 미용실에 이런 게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준비한 코트를 입었다.

아.

맞지 않는다.

그러나 몸에 열이 많은 관계로 손에 들어서 걸쳐서 액세서리로 활용하는 기지를 발휘했다.

소개팅 시간이 다가오니 돌아가지 않는 뇌가 풀가동되고 있다!


"운명 맞아."


준비를 마친 나는 곧장 파스타집으로 향했고 그날 운명의 그녀를 만났다.

보자마자 쿵쾅대는 내 심장이 "운명 맞아."라고 말하고 있다.

인사를 하고는 이야기보따리를 마구마구 풀어냈다.

이미 그녀와 내가 좋아하는 것이 비슷했기에 대화는 너무 즐겁고 좋았다.

소개팅이라는 과업의 무게가 사라졌다.

그녀는 그냥 그녀였다. 문자 너머 담백함과 목소리 너머의 따뜻함을 모두 가진 사람.

그녀도 나를 마음에 들어 한 눈치다. (절대 착각 아니었다.)

얼마나 대화가 즐거웠는지, 음식을 덜 먹은 느낌이었다.

음식을 다 먹고 2차로 추운 12월이었지만 산책도 나갔다.

꿈같은 소개팅이었다.

그동안 기계적인 소개팅에 무채색으로 변한 나에게,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 물감이 칠해지고 있다.

내가 누구인지, 그녀가 누군지 대화를 하면 할수록 더욱 선명해졌다.

오후 8시에 만나서 오후 11시가 돼서야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아쉬운 마음이 새어나갔지만 그녀가 즐거웠다며 "말 편하게 하세요"라고 했다.


첫 만남 후기


집에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핸드폰도 보지 않고 멍하니 코트를 만지작거렸다.

원래 소개팅을 하면 항상 복기 과정이 있었다.

이 말은 하지 말걸, 이 부분은 점수를 땄겠지?

하지만 그날은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대신, 가슴속에 무언가로 가득 차오르고 충만해지는 기분만 남았다.

일반화되어 가는 분석과 평가하는 나 말고 따뜻하고 몽글몽글한 나만 있었다.

그러면서 사랑에 빠지고 있었다.

만약 다음에 애프터가 거절되어도 상관없었다.

상처를 받겠지만 그래도 내 세상이 컬러티브이가 되는 선물을 해준 사람이다.


그녀의 답장

용기 내어 톡을 했다.

[오늘 너무 즐거웠어~ 이번 주 토요일에 시간 되지?]

그리고 그녀의 답장에 나는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네. 괜찮아요. 장어덮밥 먹으러 갈까요?]


40번의 소개팅 끝에 찾은 답은 이거였다.
진짜 나를 보여주는 용기. 그리고 그 용기를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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